얼마 전 문득 밤하늘을 보니 서쪽 밤하늘에 제가 좋아하는 초승달이 밝게 떠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슴이 설렜습니다. 희미한 별 몇 개만을 볼 수 있는 뉴욕의 밤하늘에 달은 아직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 삭막하지 않다는, 아직도 살 만하다는 반증이라도 하듯이 언제나 밝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가슴을 들뜨게 합니다.
제가 보름달보다 초승달을 더 좋아하게 된 첫 이유는 어릴 적 들었던 삼국유사의 달 이야기 영향이 큽니다. 잘 알려졌듯이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가 경쟁을 하던 시기에 땅속에서 발견한 거북이의 등에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의미를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현재적 관점에서 보아 백제는 보름달로 힘이 충만하고 초승달은 이제 시작하는 달이라 약하다는 뜻이라 해석하고, 미래의 관점으로 보아 백제는 이미 다 차서 기울어질 것이고 신라는 점점 더 커지게 되리라는 해석을 할 수 있는데, 백제 왕은 현재적 의미에 중점을 두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아 신라에게 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상징성은 사고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초승달은 비록 작지만 보름달이 되는 첫걸음이라 희망적이고 미래 진취적인 의미가 현재에도 통용되므로, 이런 의미에서 초승달을 좋아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초승달은 성모님의 존재 의미를 설명하는 상징으로 많이 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달의 상징적 근거는 여러 가지 있으나 대표적으로 신약성경의 요한묵시록 12장 1, 2절에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라는 기록이 있고, 이에 가톨릭 교회는 이 여인을 성모님으로 해석하여 성경 말씀대로 발 아래 초승달을 배치합니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해 밤하늘을 밝히듯이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죽음을 각오하고 온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 성령으로 외아들 예수님을 잉태합니다. 이때 고백합니다. "저는 주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즉 예수님의 상징이 태양이라면 성모님은 달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성모님의 절대적인 신앙심을 닮아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온전히 반사해 세상을 밝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아가 우리 교회의 교부들도 초승달을 시작이며 성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또 지는 달인 그믐달은 죽음, 보름달은 충만한 완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위에 세워진 교회가 그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달의 변화와 닮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외아들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절대적인 믿음은 교회의 모습이고 그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어 인류 구원의 희망이 되셨으니 교회의 시작과 성장의 상징인 초승달과 성모님이 참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초승달 같은 성모님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당신의 절대적인 믿음이 우리 구원의 시작이 되었듯이 오늘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희망을 찾고, 목마른 입에 한 잔의 물의 여유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사 간구합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밤하늘의 수많은 별은 그 빛을 잃었어도 고고하게 밤하늘을 밝히는 달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 달빛은 속삭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고,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그리고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고…. 그러니 두려움에 이 밤 하얗게 새우지 말고 편안히 자고 내일의 태양을 맞이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