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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나라 순서의 원칙

New York

2017.07.0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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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교수
말을 할 때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생각 외로 놀라울 때가 많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살펴보는 것이 언어학을 연구하는 즐거움이리라. 사람의 심리나 사회의 인식 등이 고스란히 언어 속에 담겨있기도 하다. 언어가 곧 사람이라는 말, 언어가 곧 사회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의 단어가 되는 경우나 두 개 이상의 단어를 나열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단어의 순서는 친근함의 표시다. 무엇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가까운 것을 먼저 이야기한다. 엄마아빠, 여기저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엄마가 아빠보다 가깝고, 여기가 저기보다 가깝다.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속한 집단이 앞에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순서는 중요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학교들의 이름을 쓸 때도 자기중심적 태도가 나타난다. 연고전인지 고연전인지는 다른 학교 사람은 전혀 관심이 없지만 두 학교 사람들은 순서 때문에 난리다. 학교를 부르는 순서에 일희일비하기도 하니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회사.신문사 등 모든 순서에 적용된다. 보수신문을 부를 때 '조중동'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 순서에 대해서 동아일보의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게 나라의 순서로 들어가면 심각성이 커진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 한국과 중국을 이야기할 때 한일, 한미, 한중이라고 하지 일한, 미한, 중한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만약 한국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매국노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외교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상대를 예우해서 상대를 먼저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놀라게 되는 순서가 있다. 그것은 북한이 들어갈 때다. 북한이 주적인지 아닌지 논쟁이 있을 만큼 종종 북한은 멀게 느껴진다. 그런데 순서를 쓸 때는 관점이 달라진다. 남한과 북한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남북한이라고 하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한이 앞에 온다. '북미, 북일, 북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예다. 아무리 치고 박고 싸우는 존재여도 동족이 가깝다는 증거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나라 순서에 우리의 관점이 들어가서 종종 복잡한 양상이 될 때가 있다. 여러분은 일본, 중국, 미국에 대해서 어떤 나라를 친근하게 생각하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라의 순서를 써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본과 미국은 일미인가. 미일인가? 중국과 미국은 중미인가, 미중인가? 일본과 중국은 어떤가? 아마 대부분은 미일, 미중, 중일이라고 쓸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순서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친근감보다는 센 나라를 앞에 두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 나라를 표현하는 경우에도 이런 관점이 그대로 적용된다. 한미일, 한중일, 한미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각각의 나라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라면 이런 순서 매김이 불편하거나 불쾌할 수 있다. 따라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한쪽 편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한미일, 한일미를 섞어 가면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한다. 예를 들어 한일중, 한중일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면 좋겠다.

순서에는 관점이 들어가 있다. 중요도나 친근감도 들어가 있다. 순서를 이야기할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자, 그러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세 나라 이상이 될 때 한국을 어디에 놓을까? 예상했을지 모르나 모두 맨 뒤다. 일본에서는 일중한, 중국에서는 중일한이라고 표현한다. 쉬운 일이 아니나 이런 순서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세 나라가 함께 한다면 우리에게도 그리 손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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