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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끝까지 버려진 삶

한국 여행을 하다 보면 출국 심사대 앞에 똑같은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해외로 입양을 가는 아기를 양부모들에게 데려다주는 사람들로서, 항공료를 절약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부끄러웠다. 6·25전쟁이 끝난 지가 70년 가까이 되는데도 여전히 고아 수출 1위 국가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이다. 언론의 표현도 이들을 수출품 취급을 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해외 입양아 수가 세계 제일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들의 귀한 생명을 수출품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

행복한 새로운 삶을 찾아 입양한 이들의 인생은 과연, 모두가 행복할까?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씨는 8살이던 1983년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에 처음 입양됐다. 29년간 미국에 살면서 두 차례나 파양(破養)됐고, 여러 차례 경찰서를 오고 갔고 약물 중독에도 시달렸다. 양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고, 결국 2012년 모국인 한국으로 추방됐다. 부모에 의해 3번 버려졌고 자기가 낳고 자란 나라에서 한 차례씩 버려지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 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 후 약 5년, 그는 지난달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다른 미국인 입양아의 이야기가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애덤 크래프서(한국명 신성혁)씨의 이야기다. 그의 인터뷰 내용 또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릴 때 나를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다. 미국인으로 살고 싶다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으로 입양됐고 38년을 살다가 41세가 된 지난해 다시 한국으로 추방됐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한국으로 쫓겨났고, 내 미국인 가족을 잃었다”고 말했다. 크래프서는 미국에 아내와 세 딸을 두고 있다.

그는 클레이처럼 첫 번째 입양 부모에게 버려졌다. 두 번째 입양 부모에게도 학대를 당했다. 그는 강도 혐의 등 여러 건의 전과를 남겼다. 2000년 이후 입양된 경우엔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됐지만, 소급 적용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릴 때 입양한 부모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클레이씨처럼 가족들이 시민권 수속 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해 혹은 의도적으로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입양아 본인이 성인이 된 후 직접 시민권을 얻으려 하지만 범죄 전과가 있다면 쉽지 않다. 결국, 강제추방으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시민권이 없는 한국인 입양아는 1만8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중앙 입양원 수석 상담원 헬렌 고는 뉴욕 타임스에 “강제 추방은 사형선고와 같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아들, 이들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한낱 무국적자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무책임한 부모와 사회가 이 젊은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근본 원인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이들 중에는 노숙자가 되거나, 클레이씨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와 사회적인 제도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김태원/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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