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사연 칼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종교
오산학교 시절 함석헌은 칼라일의 『옷의 철학』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칼라일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형식이나 제도는 껍데기일 뿐 이라고 믿었다. 칼라일은 사물의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요소인 진리와 그 겉모양과의 차이를 비유로 설명했다. 칼라일은 관공서 같은 국가기관, 교회 같은 종교기관 혹은 입학시험 같은 행정제도 등을 인간이 입고 있는 옷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옷은 상징의 표현으로 인간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나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항상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야 하듯이, 모든 제도나 조직은 계속 새롭게 변해야 한다고 믿었다.칼라일은 교회도 처음에는 인간의 뜨거운 신앙심을 보여 주었지만, 이제는 그 용도가 끝나서 버려야 할 때가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교회 제도 밑을 흐르는 그 소중한 정신은 인간이 항상 깨달아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라일에게 있어서 사물의 겉모습 뒤에 가려진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내는 일은, 곧 삶에 가장 중요한 진리를 찾는 길이었다. 함석헌은 칼라일을 통해서 건물로서 교회나 사회제도가 곧 진리는 아니고, 단지 인간이 갈아입는 옷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는 문명이나 제도가 마치 잘 맞지 않는 불편한 옷과 같이 인간을 더욱 부자유스럽게 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를 오직 하나의 종교만을 통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궁극적 진리란 결국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궁극적 진리는 시공간의 벽 속에 단단히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고정관념을 깨는 유연하고 탄력 있는 사고와 열린 마음이 진리를 광범위한 입장에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함석헌도 그래서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는 데 있어서 하나의 길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길을 통해서 도달하고자 힘썼던 것 같다. 일찍이 1953년 함석헌은 한국기독교인이 교회의 고정적인 교리에 수동적으로 복종하기보다는 다변적으로 변화해가는 삶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역설한 바 있다. “동양의 맘이 본 생명의 근본 모양도 역(易) 아닙니까? 역이란 변이란 말입니다. 인생은 변합니다. 인생이 변하는 것이라면 불변하는 교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 역사란 항상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자의 인간을 향한 메시지도 역사적 변화에 따라 다양하고 자유분방하게 그 시대 정신과 언어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수준만큼만, 또 자기가 속한 시대적 한계 안에서만 타인과 절대자를 이해한다. 그래서 함석헌이 그 삶과 사상을 통해서 보여 주었듯이, 끊임없는 시대 변화에 따라 종교 교리나 사회제도도 고정불변 한 것이 아니라 늘 새롭고 자유롭게 재해석되고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가 극도로 보장된 곳에서라야 인간 정신은 마음껏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그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서 자신의 땀과 정열을 인간의 자유와 인간 정신의 극대화를 위해 쏟아부었던 씨알의 대변자, 즉 씨알의 소리였다.
김성수/『함석헌 평전』 저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