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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모국 실로암안과전문병원 원장 김선태(64) 목사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한국온타리오맹인후원회(회장 원종필)가 오는 30일 토론토 프린스웨스틴 호텔에서 주최하는 연례 조찬회에는 특별한 강사가 초대되었다. 전 세계 안과전문병원 원장 중 유일한 시각장애인 원장인 김선태 목사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폭탄의 여파로 각막과 망막을 상해 영원히 빛을 볼수 없게 된 그이지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수많은 이들에게 빛을 주어온 사람, 그를 만났다.

▲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달리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특별히 더 어려웠을텐데.
10살 나이에 부모도 잃은 데다 시력까지 상실했으니 그 불행의 깊이라는 것은 말로 설명할수 없다. 걷는 것, 먹는 것, 책 보는 것 등 일상생활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결국 거지가 되어 구걸에 의존하며 2년 반을 살았다. 동상, 식중독 등에 걸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 어떤 도움이 있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나? 또한 신학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번은 옻이 올라 거의 온 몸의 피부가 다 상해 갈 때 한 할머니가 집에 데려가 닦이고 먹이고 치료해 주셨다. 그 할머니 말씀이 “내가 가난해 너를 키울수는 없지만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며 살수 있도록 평생을 기도해 주마”라고 하셨다. 8살 때부터 마음 속에 예수님을 받아들여 의지하며 살았지만 그 때부터 할머니의 뜻을 따라 더욱 목회자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정부의 조처로 고아원에 보내진 뒤 점자를 배우며 신학의 꿈을 키웠다.

▲ 맹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를 다닌 것도 신학공부와 관계가 있나?
맹인 학교에서는 주로 안마사 침술사가 되는 공부만 시켰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는데 기도 덕분에 시각장애인을 돕고 싶어하는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숭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노력하고 땀을 흘려 숭실대 철학과 졸업에 이어 장로회 신학대학원 석사, 맥코믹 신학교 목회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내 꿈을 이루게 해 주신 하느님과 가족, 그 외 모든 분들의 도움 덕분이다.

▲ 실로암안과전문병원은 어떤 병원인가?
한국교회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탄생한 앞 못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으로 올해 개원20주년을 맞는다. 서울과 연변에 병원이 있고 46인승 버스를 이용, 전국 현지 진료도 하고 있다. 한 해 8백-1천명에게 빛을 찾아주고 약시 1만명에게 시각장애가 될 위험을 방지해 주는 빛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온타리오맹인후원회처럼 꾸준히 후원해 주는 많은 기관과 개인 등의 작은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없는 자, 가난한 자들에게 빛을 주는 일을 할 것이다. 병원의 젊은 의사들에게도 늘 말한다. 훌륭한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돈도 명예도 사람이 되지 못하고서 가지면 오히려 남과 자신을 해치는 결과만 가져온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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