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함사연 칼럼]함석헌의 ‘밤토실’과 민주주의

Washington DC

2017.08.30 06:0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김은주/소셜 저스티스 앤드 피스 활동가
내가 어렸을 때 방학이 되면 엄마의 친정집에 가서 즐겁게 지내던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신 도시로 변했지만 나의 고향 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성은 당시 시골의 정겨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의 기억에는 지금도 마치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세잔느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엄마의 친정은 나의 어린 시절을 소담한 자연 속의 추억으로 나의 삶을 풍부하게 수 놓아 준다. (난 정서적으로 외갓집 이라는 ‘외’를 거부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정겨운 옛 시골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엄마 친정집 뒷산에는 밤나무가 있었다. 난 이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를 맨 손으로 만지다가 찔린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던 사촌오빠가 깜짝 놀라 “밤송이엔 가시가 많으니 만지지 말라”고 야단을 치시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애가 겁도 없이 밤송이를 함부로 만지다니….”

“알았다, 알았어. 아! 함부로 만지면 아프다. 조심해야지.” 그리고 난 나중에 그 날카로운 가시 속에 숨은 달콤한 밤의 맛을 알게되었다. 두 개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물, 즉 가시 속에 감추어진 밤송이가 하나의 진솔한 맛을 연출하는 자연의 조화, 그 진실을 깨닫게 되면서 어린 나는 자연 세계의 신비를 깨달았다. 그리고 숨겨진 어떤 진실을 깨닫는 순간 어린 난 엄청 행복했다.

그리고 그 달콤한 맛을 보기 위해 비록 밤송이에 찔리더라도, 아니 그 아픔도 감수하고 밤을 따러 뒷동산이 오르곤 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사회문제, 정치문제, 그리고 역사의 전개 과정 등에 눈을 뜨면서부터, 지금은 거의 20여 년 넘게 사회정의와 평화운동에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나는 요즘들어 가시로 뒤덮힌 밤송이 속에 숨은 민주주의의 진실을 연상해 보면서 무언가 새로운 ‘도’를 깨닫는 쾌감을 느낀다.

요즘 들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시국이 말이 아니다. 이 때 서서히 “내 친척도 물 고문을 당해 죽을 뻔 했는데…”, “내 삼촌은 버마 폭발 사건 때 돌아 가셨는데…” 이렇게 이런저런 안타까운 이야기가 슬슬 나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밤송이보다 더 날카롭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 결국 이들은 달콤한 민주주의 알밤의 맛을 보기 위해 그렇게 가시에 찔렸을까? 그리고 나만이 맛보는 그 달콤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달콤한 알밤의 맛을 보게 해 주기 위해 고추가루 고문, 물 고문, 성고문, 치옥스러운 온갖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었지. 정말 이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셨구나!

“은주야! 조심해! 찔리면 아파! 오빠가 장갑 끼고 발로 까 줄께” 하시던 내 사촌오빠에게 이젠 내가 그 말을 할 때가 왔다. “내가 먼저 찔릴께. 여러분들은 모두 그냥 기다려. 내가 그 달콤한 맛을 보게 해 줄께.”

이제 나의 밤토실은 무엇이고 어떤 것일까? 정권교체 됐다고 이젠 그 밤토실의 달콤한 맛이 모두에게 보장되었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바른 해답은 곧 책임과 실천의 방정식 속에 숨은 밤토실이 아닐까? 바로 함석헌 선생님의 ‘밤토실’ 이라는것을!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