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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추의 매운맛을 아는 사람

Vancouver

2005.10.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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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매운 맛에 탐닉하면>
-매운 맛이 화(火)로 변해 금(金)인 폐의 기능을 약화시켜
-적당히 매운 맛 즐기면 기운을 발산해 상쾌한 기분 줘


우리는 매운 맛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고추의 매운 맛을 가장 즐긴다. 매운 맛에 대한 표현도 다양하다. “맵싸하다” “매콤하다” “얼큰하다” “칼칼하다” “시원하다” 등등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칼칼하다”와 “시원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칼칼하다”는 다른 나라 말로는 나타내기 쉽지 않은 우리만의 표현이다.

“시원하다”라는 말은 외국인에겐 아주 아리송할 게다. 찬 것을 먹었을 때 쓰는 것은 물론 그 반대로 아주 뜨거운 것을 먹고도 사용하니 말이다. 뜨거운 걸 먹었을 때 입에서 열이 증발하면서 나타나는 느낌을 표현하는, 한국만의 표현이다. 게다가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이른바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미적지근한 맛과 서로 반대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일 수도 있다.

고추는 생으로는 물론 튀기는 등 익혀서 먹기도 한다. 말린 걸 갈아서 고춧가루로 먹기도 하고, 발효한 콩과 함께 고추장을 담아 먹기도 한다. 지를 담아 먹기도 한다. 한국인은 고추를 그야 말로 여러 가지로 요리해 먹을 줄 안다.

고추는 ‘비타민 A의 전구물질’(몸안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비타민 A가 되는 물질)이 듬뿍 들었을 뿐 아니라 비타민 C의 함량이 매우 높다. 겨울철 특별한 채소가 없을 때 고춧가루가 많이 든 김치만 먹어도 비타민 부족현상을 없게 했던 중요한 음식이다.

기운이 없을 때 약간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면서 몸이 가뿐해져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고추의 매운 맛 덕분이다. “매운 맛을 봤다”라고 하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꽤나 혼 줄이 난 경우를 당했을 때를 뜻하지 않는가.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는 말은 보기와는 달리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고추의 매운 맛은 입맛 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강한 면모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육체적으로 기운을 번쩍 나게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다.

그런데 요즘 너무 매운 맛을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식사에 필요한 수저통과 기본적인 양념그릇 이외에 고추를 놓아둔 식당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매운 찌개류의 음식을 먹으면서 더 매운 고추를 추가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식당에서 아예 준비를 해두고 있단다. 모든 음식이 점차로 매워지는 추세에 있는 것 같다.

한의학에서 매운맛은 발산하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발산한다는 것은 기운을 위로 올려 주는 작용을 하면서 약간의 땀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운이 없을 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좋은 것이다. 혈이 부족한 사람 중에는 위장이 건조해 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음식을 먹어 음식에 있는 물기가 위장을 적셔주면 그 때부터 위장운동이 시작된다. 입맛이 없고 음식을 먹으면 그득하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소화되었는지 모르게 배가 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운 맛으로 위장을 자극해 움직이도록 매운 맛을 잘 찾는데 약으로 혈을 보해주면 저절로 덜 매운 음식을 찾게 된다. 약을 먹고 입맛이 변했다고 하는 경우다. 이렇게 매운 맛을 자주 먹다보면 힘없는 위장을 너무 꼬집어 일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하게 되어 마침내 위장 기능이 거의 소실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물을 먹어 위장을 적셔주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중에 위장이 물에 불어 있는 상태로 되 움직이지 않게 되어 결과는 같다. 물론 위장에 열이 있어 물을 먹는 것과는 다르다.

아주 매운 고추를 먹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매운 맛에 의해 몸의 기운이 갑자기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땀도 나고 얼굴이 하얗게 될 뿐 아니라 독한 술을 먹고 갑자기 취하는 것처럼 정신이 일시적으로 혼미해지거나 감각이 마비되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은 항상 현 상황에 적응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인데 계속해서 매운 맛을 늘리면 처음보다 많이 맵게 먹어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먹으면 매운 맛이 화(火)로 변해 금(金)인 폐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폐의 주 기능인 절도가 없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고 사람도 보기에 산뜻한 맛이 없게 된다. 실제로 폐의 기능이 좋지 않으면 매운 맛을 찾고 담배를 끊어 폐의 기능이 좋아지면 매운 맛을 덜 찾는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매운 맛은 감각 중에 통각과 온도감각이 복합된 피부감각 또는 혀의 맛 세포가 느끼는 압력이라고도 한다. 너무 맵게 먹는 것은 우리 몸을 자학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왜 자기 몸을 스스로 학대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나는 고추는 매우면서도 단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매운 맛도 적당한 수준이다. 그래서 일본 등 아시아의 상당수 미식가들은 고춧가루를 쓸 때 한국 것을 최고로 친다. 인정 많은 한국 사람을 보는 듯 하다. 혀를 온통 마비시키는 등 극단적으로 자극적이면서 고통만 주는 일부 외국산 고추와는 딴 판이다. 한국 고추는 맛도 한국적인 것이다.

매운 맛이 시대의 대세라고 한다. 하지만 건강 추구는 시대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 아닌가. 심한 매운 맛보다 부드럽게 매운 한국 고추로 적당한 매운 맛, 즉 한국적인 매운 맛을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작은 고추가 내는 깜찍하고도 시원한 맛 말이다. <김태희 박사>

=김태희씨(50세)는 상지대 교수,한방병원장, 한의과대학장을 지냈다. 현재 ‘푸른하늘 흰구름’ 한의원 원장.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나와 1987년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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