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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연 칼럼] 종교와 사회

격동의 20세기를 몸으로 겪으면서 종교, 특히 기독교는 함석헌에게 단순히 종교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고, 사회·정치적 계몽운동, 훌륭한 문화의 본보기, 민족발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조국을 일제의 손아귀에서 구원할 근본적 매개체로써 젊은 시절 기독교적 종교윤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혹은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적 정치이념을 선택해야 할 것이냐 고민했을 때에도, 결국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에 더욱 효율성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덜 효율적인’ 기독교를 택한다. 그는 자신이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패배자가 되거나 비효율적인 길을 택하게 되더라도 비폭력의 길을 선택했다.

정치적 의미에서건 혹은 종교적 의미에서건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오직 하나의 관점이나 주의만이 허용되고, 이 하나의 시각만을 전체가 받아들이도록 폭력적인 방법이 강요된다. 반면에, 자유민주주의적인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함석헌은 이런 면에서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의 대변자였다. 낱낱의 개성이 폭력적인 권력 횡포에 의해 탄압받지 않고 보장,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 그였기에 그는 한 종교가 폐쇄성, 독단성을 갖지 않도록 경고하기도 한다.

“종교는 믿는 자만의 종교가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이다. 종교로써 구원 얻는 것은 신자가 아니요 그 전체요, 종교로써 망하는 것도 교회가 아니요, 그 전체다.“(, p.36)

이렇게 그는 기독교를 ‘선택된 사람(選民)’들만의 종교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버림받은 씨알의 종교로 보았다. 그렇기에 폭력을 앞세운 정치깡패를 서슴없이 동원한 기독교정권(자유당) 하에서, 소외된 비기독교인을 위해 그는 ‘대선언’(1953)을 발표한다. 이 ‘대선언’은 기독교 정권 아래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종교적 입장을 신앙 고백으로 밝힌 것이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자.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오.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더욱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서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라.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비폭력을 중요시한 함석헌은 ‘종교’를 절대 계의 일이 아닌 상대 계의 일로 보았다. 그래서 종교 없이 그가 절대자나 진리를 배울 수가 없었지만, 그 종교가 그의 영원한 집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종교라도 거기 하느님을 가두어 둘 만큼 클 수는 없다고 그는 느꼈다. 그는 인간을 철저히 유한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절대자의 이름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그런 것이 단지 무한한 존재에 대한 유한자의 자기합리화, 정당화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유한적)기관도 하느님(무한적인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에게 진리란 모든 사람을 위해 각 사람의 종교, 비종교 여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것이어야 했다.

김성수/『함석헌 평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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