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사연 칼럼] 종교와 폭력
함석헌은 국가폭력과 약육강식의 가치가 휩쓸던 시대를 살았지만, 그 자신은 각 개인이나 민족 사이에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종교를 발견하고자 온힘을 기울였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시한 그였기에, 그 이웃이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사랑해야할 종교적 의무를 느꼈다. 그래서 기독교 중심주의 종교관이나,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다”라는 시각에 그는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함석헌이 늘 읽기를 좋아하던 『도덕경』도 그 핵심은 정치가에게 주는 철학가 혹은 종교인의 조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노자가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것은 비폭력의 상징인 어린아이, 여성 그리고 물로 대표 될 수 있는 부드러움과 유약함이다. 물은 낮은 계곡을 따라 흐르면서 만물에 생명을 보급한다. 어떤 생명도 물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노자에게 있어서 약은 곧 강이 될 수 있다. 함석헌은 이렇게 도덕경을 통해서 약으로 강을 제압하는 법, 비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광범위한 역사의식이 없는 종교나, 한 시대의 고민을 상실한 종교는 삶의 단면만 보여줄뿐 전체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무익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과거의 생동하는 종교적 영감일지라도 함석헌에게는 그것이 끊임없이 오늘의 시대정신에 맞게 재해석, 재적용되지 않고는 그저 화석화된 교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의 종교관과 세계관도 고정관념을 깨고, 시대의 변동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해갔다.
함석헌은 비폭력원칙을 주장한 종교 사상가로서 각 종교는 서로 보완적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여러 종교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이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다 하느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에,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었다. 이런 인간애와 더불어, 여러 종교에 대한 포용성이 서구기독교와 동양사상을 융합하게 한 근원적 원동력이었다. 한 종교가 다른 종교의 언어와 표현으로도 해석과 설명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그 종교는 보편적 종교,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참 종교인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일과 비종교적인 일, 폭력과 비폭력의 구분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모든 일이 종교적인 일이고, 모든 일이 비폭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종교적 신앙심과 인간애가 바로 종교와 비종교, 절대자 하느님과 상대자 인간을 연결해주는 통로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가 타종교를 배척하고 종교적 우월주의를 주장했을 때, 그는 타종교인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 인류공동체를 염두에 둔 인종, 국가, 종교, 이념을 초월한 휴머니스트였고 이상주의자였다. 그가 특별히 제도화된 종교를 비판했던 것은 생기발랄한 인간의 직관과 종교적 신앙심이 현학적 혹은 고정된 교리로 화석화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주요강국의 철저한 자국이익중심주의외교, 무력외교를 지켜보면서, 폭력이 없는 세상을 실현하는 길은 함석헌 뿐 아니라 인류모두가 추구해야할 진정하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믿는다.
김성수/『함석헌 평전』 저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