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쿼터가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4초. 10-14로 홈팀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뒤지고 있었다. 쿼터백 로저 스토백은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어찌해야 하나.
그때 와이드 리시버 드루 피어슨이 눈에 띄었다. 엔드존 근처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 눈을 질끈 감은 채 힘껏 공을 던졌다. 50야드나 되는 먼 거리였다. 스핀을 잔뜩 먹은 공은 피어슨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다. 그가 가볍게 엔드존을 넘어서자 주심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댈러스, 터치다운." 믿기지 않는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그 순간 스토백은 무릎을 꿇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자기도 모르는 새 '헤일 메리(Hail Mary)' 곧 '성모송'이 입밖으로 나왔다. '아베 마리아'다. 언론은 스토백의 터치다운 패스를 일컬어 '헤일 메리 패스'라고 불렀다. 쿼터백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적진 깊숙이 던지는,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공을 말한다. 1975년 12월 열린 플레이오프 게임을 재구성해 봤다. 프로풋볼리그(NFL)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다. 종교와 스포츠의 만남이 가져온 결과물이라고 할까.
이후 '헤일 메리'는 풋볼의 또다른 이름처럼 팬들 사이에 널리 회자됐다. 쿼터백이 아니더라도 터치다운을 한 선수는 으레 무릎 꿇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심지어 '헤일 메리'의 매력에 푹 빠져 정부 최고위직을 마다했던 이도 있다. 주인공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라이스는 NFL 커미셔너직을 제의받고는 이른바 '심쿵'(심장이 쿵 떨어진다는 속어)했다. "어렸을 적 나의 '드림잡'이었다"며 수락의사를 내비친 것.
라이스는 원래 콜린 파월 후임으로 내정돼 있었다. 국무장관이냐, 풋볼 커미셔너냐. 갈림길에서 라이스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화들짝 놀랐다.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결국 부시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에 못이겨 장관이 될 수밖에. 프로풋볼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그것도 흑인이 커미셔너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국무장관은 댈게 아닌 사례도 있다. 풋볼팀을 인수하려 했다가 실패하자 할 수 없이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도 있으니까. 그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80년대부터 풋볼구단 인수에 열을 올렸으나 번번이 무위로 끝났다. 최근엔 버펄로 빌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그가 써넣은 금액은 무려 10억 달러. 하지만 구단 측의 거부로 꿈을 접어야 했으니. 대선 캠페인이 한창일 때 트럼프는 한 기자에 속내를 털어놨다. "내가 (버펄로) 빌스만 인수했더라면 백악관은 생각도 안했을텐데." 뒤집어 얘기하면 홧김에 대선에 뛰어들었다는 게 아닌가.
당선되고 나선 엉뚱한 말을 해대 구설에 올랐다. "알고 보니 (대통령 직이) 훨씬 신이 나네. (풋볼구단 인수 보다) 싸게 먹히고." 북한과 말폭탄을 주고 받던 트럼프가 이번엔 NFL과 정면충돌해 사태가 험악해졌다. 일부 선수들이 인종편견과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표시로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자 트럼프가 '비애국적인 행동'이라며 욕설을 퍼부어 댄 것. 대통령이 '무릎꿇기' 금지 규정을 만들라며 NFL을 압박하자 급기야 댈러스의 구단주 제리 존스가 승부수를 띄웠다. 선수들과 함께 무릎을 꿇은 것. "트럼프, 그 입 다물라"는 무언의 항의였다.
사진을 보면 완전 '헤일 메리' 포즈다. 구단주 대신 트럼프가 무릎을 꿇었다면 어땠을지 상상을 해본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흑과 백, 모든 인종이 하나가 돼 미국사회가 통합됐으니…" 한낱 가을밤의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