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잘 먹고 잘 살아라!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그런데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주의 말치고는 아주 순하고 부드러운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주도 참 좋게 한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일종의 비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그래 너는 그렇게 아껴서 잘 살라는 말로도 들렸기 때문이다. 아주 축복하는 말은 아니지만 심한 저주의 말로도 볼 수는 없다. 저주를 하려면 "폭삭 망해라, 쫄딱 망해라" 같은 적절한 표현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잘 살라고 하다니.
반어법(反語法)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반어법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좀 그렇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보자"고 했다면 반어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이고 부자 되겠네!"라고 했다면 완전 비꼬는 말로 반어적이다. 반어는 비꼬는 느낌이 더 강해야 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라는 말에 진정성이 약하기 때문에 반어적인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표현에서 반어적인 느낌이 적다는 것이 재밌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만약 이런 표현을 번역한다면 느낌이 잘 전달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들은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편 잘 먹고 잘 살라는 말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표현이다. 잘 사는 것의 주요 척도가 먹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사는 방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으리으리하게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고, 보석으로 치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잘 먹는 것을 잘 사는 척도로 본 것이다. 이것도 한민족의 사고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먹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 민족이 못 먹고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아주 틀린 접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못 먹고 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말에는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함을 알 수 있는 표현이 많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좋다", "금강산도 식후경" 등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잘 먹고 나서 해야 함을 보여준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표현은 서민적이면서도 먹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먹는 것은 단순하게 먹는 게 아니다. 잘 먹어야 한다는 말에 비밀이 하나 더 숨어 있다. 그냥 먹지 말고 잘 먹어야 한다.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먹는 것만 잘 해도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먹는 것만 잘 해도 건강해 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한다. 밥만 잘 먹어도 다른 보약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감기도 밥상머리에서 떨어진다. 아파서 잘 못 먹는 건지, 잘 못 먹어서 아픈 것인지 선후가 불분명할 때도 있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이 있다.
아무거나 먹지 말고, 잘 먹어야겠다. 어렵게 살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너무 풍족해서 탈이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늦게까지 먹고, 너무 달게 먹고, 너무 짜게 먹는다. 그 뿐인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세먼지도 먹고, 공해도 먹는다. 건강한 식사에서는 '소식(小食)과 절제, 그리고 천천히'가 답이다. 그리고 그게 인생을 사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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