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을 오래한 교민들 중에서도 늘 한국 식품매장에 나와 있는 한국식 재료만을 고집하는 모습을 자주 대한다. 하지만 서양식 채소이나마 이 토양과 기후에 가장 잘 맞는 제철음식을 찾아서 그 이국적인 맛과 향을 제대로 즐겨보는 것도 외국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우선 민족 수만큼이나 다양한 서양채소의 종류와 맛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샐러드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푸른 잎 채소인 ‘상추(Lettuce)’는 일년 내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요리 테크닉 없이도 쉽게 시도해볼 수 있고 특히 서양 상추류(레터스-lettuce)는 한국식 불고기나 돼지 삼겹살을 먹을 때 함께 어울려도 맛에 손색이 없다.
한국의 쌉쌀하면서 뒷맛이 개운한 상추와는 달리 이곳 상추들은 씹히는 맛이 강하고 비교적 달큼한 맛이 도는 것이 특색이다.
얼마 전 한국 드라마 중 조선시대의 궁중음식을 소재로 다루었던 ‘대장금’이 있었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드라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역시나 외국 친구들, 특히 아시안 친구들의 ‘대장금’에 대한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그다지 드라마에 관심을 두지 않아 그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끊이질 않고 계속 되는 그 드라마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 못 이겨 결국 뒤늦게 휴일을 핑계로 ‘대장금’ 비디오테이프를 몽땅 빌려다가 며칠간 새벽을 불사하며 다 보았다. 같이 서양요리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라서였을까?
왜 그리도 한국요리에 열광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도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요리의 맛’을 미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음식의 맛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음식의 맛을 머리 속으로 그려 볼 수 있다?’ 그만큼 요리에 대한 창의적인 감각과 열정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음식에 쓰일 재료들의 맛과 특성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서양요리를 배우게 되면서 역시나 가장 난감했던 점이 낯선 외국 식재료들의 맛과 특성들이었다. 캐나다나 유럽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맛을 머릿속으로 그리기가 힘들 뿐 아니라, 아무리 요리책의 레시피를 읽어도 그 맛과 느낌을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학교에서도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바로 서양채소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낯선 소스들이었다. 어디에 쓰이는 것이며, 어떤 맛을 내는지 그리고 어떤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를 배웠다.
어느 날엔가 쉐프(Chef)를 따라 클래스 전체가 다운타운의 예일타운(Yale town)에 있는 ‘어번페어(Urban fair)’로 식재료 견학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매장의 코너코너마다 돌면서 일일이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꼼꼼히 그 맛과 쓰임새를 설명하시던 쉐프를 졸졸 따라다니며 매장 전체를 1시간 반이 넘도록 다녔었다.
이후로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스토어(super store)’에 나가면 서양채소 코너에 가서 이름은 물론 그 밑에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는 요리법도 읽어보고, 그나마 대강 머릿속으로 맛이 그려지는 서양채소들을 사다가 요리해 보고 맛도 보았다. 이때마다 기꺼이 희생양(?)으로 시식에 동참해야 했던 가족들을 즐겁게도 당황하게도 만들었던 것 같다.
<서양채소와 소스들을 과감하게 구입해 활용해보자>
사실 서양요리와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으로, 식품매장에 있는 서양채소와 소스들을 과감하게 구입해서 직접 만들어보고 맛보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을 듯 하다. 다시 ‘서양채소’ 이야기로 돌아가서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푸른 잎 채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샐러드에 자주 이용되는 잎채소를 중심으로 우선 소개할까 한다.
한국 사람들이 샐러드를 만들거나 샌드위치를 만들 때 그 아삭아삭 거리는 맛이 좋아 자주 찾는 ‘아이스버그(Ice berg)’, 모양새가 동그랗게 모리모양을 하고 있어 ‘헤드레터스(Head lettuce)’라고도 부른다. 만져 보았을 때 단단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뿌리에 흙과 실오라기 같은 잔뿌리가 그대로 달려있는 채로 판매되고 있는 ‘버터레터스(Butter lettuce)’, 혹은 ‘보스턴레터스(Boston lettuce)’라고 불리우는 이것은 잎이 너무도 부드럽고 맛이 연해 조금만 강하게 씻어도 쉬 짓무르지만 입 속에서 살살 녹는 듯한 맛이 일품이라 샐러드 채소로는 그만이다. 색깔도 곱고 매력적이라 샌드위치의 곁들임(Garnish)- 주요리의 장식효과는 물론 풍성한 맛을 돋우는데 사용되는 것을 ‘가니쉬’라고 부른다-으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다른 상추에 비해 약간 비싼 편이다.
또한 샐러드는 물론 한국음식에 이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서양상추로 ‘리프 레터스(Leaf lettuce)’가 있는데 잎의 끝이 짙푸르다 못해 붉은 빛이 도는 것(Red leaf)도 있고 연두색에 가까운 색을 하고 있는 것(Green lettuce)도 있다. 잎이 쉽게 하나씩 떨어지는 단점도 있지만 맛이 부드럽고 강하지 않아 서양요리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로메인 레터스(Romaine lettuce)’는 시저샐러드에 반드시 쓰이는 서양 상추로 아삭아삭 거리는 잎의 육질이 좋아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서양상추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토끼풀처럼 동글동글한 잎 모양을 하고 있는 ‘워터크레스(Water Cress)’는 한 묶음이 작은 편이고 진한 푸른 빛깔이 나는 잎을 가지고 있다. 그 맛은 매콤하면서도 줄기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뷔페나 연회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카나페로 많이 쓰이는 ‘벨지움엔다이브(Belgian endive)’는 끝이 뾰족하면서도 하얗고 끝이 예쁜 노란빛을 내고 있고 반들반들 거리는 육질이 곱고 부드러운 맛을 내어 ‘오덜브스(Hors d’oeuvre)’- 에피타이저로 메인 요리에 앞서 입맛을 돋우는 요리를 말하는 프랑스 요리 용어-로 자주 애용되고 있다.
쉽게 짓무르는 단점이 있어 식품매장에서도 축축한 종이 타월 등으로 감싼 채로 판매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샐러드에 종종 사용되고 있는 싹 채소인 ‘알파파(Alfalfa)’는 아주 작은 무순이나 콩나물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그 맛은 달큼하고 부드러워 샐러드에 애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식품매장 어디를 가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작은 잎 채소의 모듬인 ‘메스컬런(Mesclun)’-프랑스용어-은 여러가지 잎채소의 모듬으로 모두가 ‘베이비 상추’라는 공통점이 있고 부드럽고 빛깔이 다양해 샐러드로는 물론 서양요리의 가니쉬로 자주 애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채소들이 즐비하지만 무엇보다도 식품매장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고 맛을 보는 것이 최고의 아이디어! 다음 주엔 이 서양채소들을 이용한 다양한 샐러드와 손쉽게 집에서 만들 수 있는 드레싱을 소개할까 한다. 이번 주말엔 서양채소 맛과 향을 미리 익혀두면 좋을 듯하다.
------------------------------------
* 신선한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서양상추 손질 및 보관법 5가지
1. 상추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고 통째로 씻는다.
2. 차가운 물(얼음물도 좋다)을 넉넉히 받아 상추의 뿌리 쪽을 잡고 살살 흔들어주면서 상추 전체를 씻는다.
3. 씻은 상추는 물기를 살짝 흔들어가며 털어내고 구멍이 뚫린 체에 밭쳐 두어 물기를 뺀다. 이때 잎 부분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뿌리 쪽을 위로 향하게 하여 둔다.
4. 샐러드나 요리에 사용하기 직전에 채소용 탈수기를 사용하거나 종이타월 등을 이용해 물기를 반드시 없앤다.
5. 뿌리를 없애고 잎을 한 장씩 사용할 때는 이용하기 직전에 뿌리를 잘라내고 종이나 천을 그릇에 넣고 상추 잎을 담아둔다.
6. 종류가 다른 푸른 잎 채소는 한데 섞어 보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짓무르게 된다.
7. 둥근 ‘아이스버그 상추’의 뿌리는 공을 잡듯 잡고, 뿌리 쪽을 잡고 싱크대에 탁 치면 뿌리가 쉽게 쏙 빠진다.
8. ‘워터크레스’는 반드시 사용 직전에 얼음물에 넣어 담가두고 바로 바로 사용하도록 한다.
--------------------------------------------
요리칼럼니스트 정성숙 님은…
이화여자대학교 가정대학을 졸업하고 종합여성지 ‘주부생활’, ‘여성동아’, 그리고 요리전문지 ‘에쎈’의 기자를 거쳐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까사리빙(Casa Living)’과 ‘데코 마담휘가로’의 편집장을 지냈다.
2003년 8월 밴쿠버로 이민 온 이후 현재 Vancouver Community College에서 ‘Culinary Arts’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