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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35년 만에 찾은 친구, 그리고…

Los Angeles

2017.10.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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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선 / 수필가
1969년 5월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초등학교 친구 경숙의 결혼식을 끝으로 우린 소식이 끊겼다. 그날 난 새신랑에게 내 친구와 행복하게 살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돌아서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후 나도 결혼하고 미국 와서 낯선 세상을 개척하느라 어려웠다. 그런 어느 순간순간에도 지난 일을 잊지 않았다. 친구들 중엔 경숙이가 가장 보고 싶어 꿈에도 잊지 못했다. 찾아보자! 서울에 가서 혜화동 성당과 명동 성당에도 가봤다. 그런데 어느날 중앙일보에 오랜 친구를 찾은 어느분 기사가 실렸다. 난 그 기사에서 한가닥 희망을 잡았다.

미국에 돌아온 나는 '대구 서부 경찰서 권태일 계장님'에게 나의 묶은 사연을 절절이 써서 보내며 이 일이 이루어지면 복권당첨보다 더 좋겠다고 피력했다. 권 계장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35년 만에 소재를 찾았다. 35년 만에 전화로 통화하던 그날 나도 그 친구도 전화선도 떨며 울었다. 하루 빨리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보고 싶다. 난 건강상 이유로 한국에 가지 못해 친구부부와 권 계장님부부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한데 친구는 무섭고 엄두가 안나서 못 온다고 하고, 계장님은 다녀갔다.

첫 전화에 친구는 '어떻게, 어떻게' 저를 찾았느냐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돈보다 그 무엇보다 더 소증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친구도 대번에 '그렇지, 그런데 알면서도 그게 그렇게 실천하게 되지가 않더라'고 한다. 친구는 이 세상에 '나를 보고싶어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도 했다.

친구를 찾고 3년이 지난 후 나는 몸을 좀 추스리고 서울에 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이야 먹었지만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같다. 우린 서로 감격해 끝없는 지난 이야기에 시간 가는줄 모르며 롯데 식당가에서 맛있는 냉면을 나눴다.

이후 얼마간 서신을 주고 받고 전화도 이어졌다. 나는 선물도 그 친구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가려서 보냈다. 다음해 또 그 다음해 그렇게 3번인가 가서 만났다. 친구는 내게 '너는 그 옛날 순수 그대로네' 했다. 사느라고 영악해졌다는 그 친구는 어느쪽으로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씩 뜨악해지는가 싶다. 아둔한 나는 '내 속 짚어 남의 속'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나? 애타게 찾은 나와 찾음을 당한 친구 사이에 세밀한 심리적 차이가 컸나? 살아온 날들이 너무 다른 친구는 '목소리 듣는 것 만으로 만족하자'고 한다. 나도 그러자고 쾌히 동의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젠 이런 이야기도 아픔없이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교장부인으로 잘 지내는 걸 봤으니 그걸로 족하다. 사람이란 결국 '지리적인 거리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가 문제가 아닐까' 하고, 난 그 친구의 뜻을 존중하며 그것으로 아름다운 우정을 마음에 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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