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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다빈치 코드'를 어떻게 볼 것인가?

Vancouver

2006.05.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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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성 목사 다우니 동양선교교회


댄 브라운(Dan Brown)의 다빈치 코드가 영화화 되어 오늘부터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개봉된다. 2003년에 이 소설이 출간된 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가?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성적'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문제이다. 성과 종교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깊은 관심사이다. 가장 깊은 것을 알고 싶었는데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과감하게 가장 깊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 소설의 핵심은 '성배'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Robert Langdon)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피라미드 모형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이 나온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상징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피라미드에 있는 역삼각형의 모습을 통해서 여성의 상징인 잔(▽)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기호학에 일가견이 있던 랭던은 정삼각형(△)은 남성을 의미하고 역삼각형 (▽)은 여성을 의미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랭던은 한 순간에 눈이 열렸다. 그토록 찾던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배가 막달라 마리아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마리아의 자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고 이 후손이 프랑스의 멜링거 왕족을 통해서 보존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들리지만 비기독교인들 에게는 대단한 흥밋거리이다. 종교와 성 이보다 더한 우주적인 스캔들이 있겠는가?

문학 장르에 순수예술(Fine Art) 분야가 있다. 'Fine'이라는 말은 라틴어 'Finis'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은 end라는 뜻이다. 즉 순수예술은 그 자체로서 완결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 즐거움과 만족이 있다. 시나 소설이 그 장르에 들어간다.

다빈치 코드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순수예술 작품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작품 자체로서 완결성이 없고 다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 그 자체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하나의 순수예술로 즐기고 감동받는 차원에서 끝날 수가 없다. 생각과 사고에 침투해 들어가 물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 기독교인들은 이 책은 단순히 허구적 소설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너무 과민 반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 정통교리를 지키게 하든지 의심하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결단하게 한다. 신중한 반응과 판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가장 결정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오류는 그가 인용하고 있는 빌립 복음서이다. 이 자료를 통하여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근거를 제시했으니 그 본문을 직접 보자. 오리지널 사본은 오래되어서 군대 군대 훼손된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많은 문장들이 불완전하다. 영역본을 소개해 보자.

"And the companion of the […] Mary Magdalene […] her more than the disciples […] kiss her on her […]. The rest of […]. They said to him 'Why do you love her more than all of us'"

[ ]로 된 부분은 사본에서 훼손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내용을 가지고 댄 브라운은 엄청난 비약을 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훼손 부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댄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티빙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소개하는데 이탤릭체로 기록해 놓았다.

And the companion of the Saviour is Mary Magdalene. Christ loved her more than all the disciples and used to kiss her often on her mouth. The rest of the disciples were offended by it and expressed disapproval. They said to him "Why do you love her more than all of us?" (Da Vinci Code 246)

비교해 보면 다빈치 코드가 원본의 의미를 상당히 살려낸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고증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했다.

예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쉬운 것 하나를 지적해보자. 구두점을 바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원문에는 쉼표()로 되어있는 것을 다빈치 코드는 마침표(.)로 읽고 있다. 구두점 하나가 고대 문서를 해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 점 하나가 상당한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결정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 kiss her on her […]."라는 부분이다. 다빈치 코드는 이것을 "used to kiss her often on her mouth."라고 기록하고 있다. kiss on her […]에서 [ ]에 들어갈 수 있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소설가로서 kiss on her hand 또는 kiss on her head 등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꼭 "kiss her often on her mouth."라고 기록하는가? 그것도 원본에 있지도 않은 "used to"라는 동사를 써가면서 말이다. 강한 성적행위의 인상을 의도적으로 주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인 예수의 결혼설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댄 브라운은 역사적인 자료를 바르게 사용하고 있지 않다.

▷남종성 목사는=다우니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와 월드미션대학교 교수로 있다.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랄프 마틴(Ralph Martin) 교수의 지도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빈치 코드 파동으로 취할 점
신앙 반성의 기회 돼야

이번 ‘다빈치 파동’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첫째는, 자신의 신앙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한다. 다빈치 코드의 등장을 계기로 신앙인들이 좀더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두 번째는, 선교의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많은 미국교회들은 이미 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오히려 기독교를 바로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자.

세 번째는, 기독교인들이 바른 지식을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다빈치 코드의 전문적인 지식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도 지적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네 번째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저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할일이 하나 있다. 영화사가 ‘이 영화는 역사적인 바탕이 없는 영화입니다’라는 글을 자막에 올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다섯 번째는, 거대한 상업주의 문화에 민감해야 한다. 다빈치 코드의 열풍은 결국 상업주의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출판사나 영화사는 사람들이 놀라 떠들어 주기를 바란다. 관심이 증폭될수록 장사는 잘 될 것이다. 맘몬신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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