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 김의 ‘뷰티풀 패밀리’ 연재
이민지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정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고단한 이민 생활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본지는 오늘부터 스완 김씨의 취재기‘뷰티퓰 패밀리’를 실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훌륭한 가정을 이룬 한인들을 소개합니다.
스완 김씨는 “가정들이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넘겼는지를 소개함으로써 인생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며 “또한 이를 통해 한민족의 긍지도 높이고 사회를 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스완 김씨는 한국에서 교사생활을 한 바 있으며 밴쿠버에서도 스완 패밀리 차일드 케어를 설립하는 등 후진 교육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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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김이 찾아가는 뷰티풀 패밀리]
이역만리 밴쿠버서 옛 궁중의 모습 간직
茶.음식문화도 보존. 한복도 2백 벌 소장
“청소년. 부모들에게 한국문화 전수하고 싶어”
1950년 매화가 한창인 3월에 철종임금의 생가인 누동궁에서 5대 손녀인 이경란씨가 태어났다.
뉴욕에 거주하는 의친왕(고종의 2남)의 5녀 해경(66)씨의 누동궁의 추억은 이러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조경이 잘 돼 있었고 경치가 수려했고 출입문 입구에는 양쪽으로 커다란 도자기가 나열돼 있어서 마치 중국의 성에 들어가는 기분 이었습니다.
”
이때 누동궁의 주인은 바로 이경란씨의 친 할아버지인 청풍군 이해승씨였다.
그러나 태어난 지 3개월 후 6.25가 일어나고 조선조 최고 작위인 이화대수장을 받았던 할아버지와 집안의 남자 분들이 납북되면서 누동궁의 추억은 초등학교까지로 접고 홍은동 선조들의 선산이었던 백련산 밑자락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83세까지 사신 할머니, 상궁나인 3명과 결혼 전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궁중의 법도 및 예절과 음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신분은 귀족이었지만 생활은 여느 서민처럼 검소했으며 지금까지도 모든 대소가가 근검절약을 가훈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해방 직후 고종의 직계 왕족 재산은 전부 국가에 귀속됐지만 직계 왕족이 아니었던 철종 계열의 재산은 몰수 되지 않아 오빠인 이우영 회장이 사유지인 누동궁을 매각한 자금과 각고 끝에 모은 재산으로 홍은동에 그랜드 힐튼 호텔(옛 스위스 그랜드 호텔)을 설립하였다.
이 여사의 댁을 처음 방문했을 때 다실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역만리 밴쿠버에 한국 옛 궁중의 접대실을 재현해 놓은 듯한 병풍과 바닥재와 방석들, 녹차, 말차, 병차와 어울리는 형형색색의 먹음직한 다식들. 이 모든 차림들이 정연하게 놓여 있고 다도를 시연할 때의 몸가짐과 손놀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엄숙하고 긴장감까지 들게 하였다.
이여사는 본국에서도 물론이지만 이민지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우리의 얼과 정체성을 점차 잃어 가며 서구의 음식과 문화에 더 친숙해 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정약용 선생께서는 술 문화는 망하고 다(茶) 문화는 흥한다고 하셨습니다.
술이 얼마나 청소년들을 멍들게 하는지는 모두가 인정할 거라고 믿습니다.
가족 또는 다른 모임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송편과 같은 우리의 음식들을 곁들이면 부모와 대화도 넓히며, 이중문화, 이중언어가 조화를 이루는 성공적인 교육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가정학에서도, 특히 전통 문화생활 영역으로 석사학위까지 받고 이민 길에 올랐지만 이곳 밴쿠버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재 북미 한인 청소년을 위한 한국 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를 주제로 ▶한국어 교육과 문화교육의 통합적인 관점에서의 정체성 확립, ▶한국 생활 문화 교육교재의 개발과 요구도 조사, ▶뿌리 교육(4개) 예절교육(4개), 의례교육 (4개), 음식교육(11개) 등 총 23개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2006년 2월에 성신여대에서 박사 학위까지도 받게 되었다.
장차 이 박사의 목표는 이곳 밴쿠버에 개인 또는 단체에서 한국 문화원을 세울 수만 있다면 여러 한글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운 이론을 실제로 실습할 수 있게 순번적으로 방문하게 하고 어머니들에게도 5첩(서민), 7첩, 9첩(반가), 12첩( 궁중요리) 상차림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가져온 200벌의 한복도 전시하며 한복 입기 운동을 벌이고 백일상, 돌상, 폐백, 다도 등은 물론 음식문화까지 곁들인 우리의 전통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국제 명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다면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서는 내 국가에 대한 긍지로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태와 열정이 어쩌면 밴쿠버의 대장금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부군 되는 박태식씨는 한국에서부터 일가견을 이룬 회계사로 사업도 하며 그저 조용히 웃음짓는 외조로써 부인을 박사로 배려하고 밀어주는 그런 남편이었다.
아들 둘은 한국적인 국제신사가 되어 결혼하여 첫 손자를 부모에게 안겨주었고 막내 딸은 학생신분으로 자신의 영역을 부모의 뜻에 맞춰 연구 중이었다.
두 며느리도 시어머니와 더불어 기도의 동역자, 보조자로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서 이들이 땅에 정착하게 됨을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박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이 세대에 왕가의 후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부담되는 일이 더 많았지요. 그리나 지금은 토기장이인 하나님께서 저를 빚으셨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나의 길이라 생각되며 기쁨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람은 누구든 아름답기를 원하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반대가 될 경우가 더 많다.
과연 어떤 힘이 힘들었던 삶의 고난과 역경을 넘길 수 있었을까? 영광과 오욕도, 부함과 가난함도, 성공과 실패도 사랑과 미움도 다 교훈이 될 수 있다.
전적으로 옳게만 산 사람은 없듯이 겸손이 꼭 미덕일 수는 없다.
우리 함께 인생을 털어 놓고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경란씨 근황
▶9월30일:핸더슨 몰 30분간 폐백시연
▶10월7일: 써리 한인 장로 교회(다도 폐백시연)
▶10월8일 헤브론교회(다도,폐백 시연)
▶10월11일 밴쿠버 한인 장로교회 (다도 폐백 시연)
▶10월14일 힐튼 호텔 한인장학회 디너 만찬 티 세레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