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독교의 유일신(唯一神)사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앙사상은 위에서 열거한 신관(神觀)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기독교의 경전(經典)인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은 첫째,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creative)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그를 경외(敬畏)하는 성도들 안에 내재(innate)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셋째, 내재하시면서도 만유를 초월(transcendent)하여 계시며 (엡4:6) 또한 다함이 없으신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infinite and eternal) 유일무비 하신 절대적인(absolute) 만유의 주재(主宰)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소부재(omnipresent) 하심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이 계시는 같아서 하나의 조언(助言)을 드립니다.
어느 교회의 청년들이 단체로 여행을 떠나서 어느 산사(山寺)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 상주하시는 스님이 교회에서 온 청년들에게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는데 그러면 똥 속에도 계시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청년들이 대답을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으니까 스님이 낮은 목소리로 “부처님께서는 똥 속에도 계신다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현답(賢答)일지는 모르나 정답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시다함은 그 광대 무한한 천지와 만물을 총관(總觀)하시고 섭리(攝理)하시며 우리의 머리 털과 신경세포까지도 관찰하시고 살펴 아신다는 뜻이지 편재(偏在)라 하여 똥 속에나 마귀 속에 까지 계신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아서 육신의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形象)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복배(伏拜)합니다.
즉 나무나 돌이나 어떤 물질로서 사람의 형상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세우고 거기에 엎드려서 절 하면서 복을 빌고 소원을 올립니다.
옛날에만 있은 이야기가 아니라 고학과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그린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대구에 가면 가파른 높은 산정(山頂)에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매일 같이 수 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절하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참으로 허황(虛荒)된 짓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산이나 바다나 나무나 기암괴석(奇巖怪石)들 그 모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들인 즉 감사하면서도 선용(善用)할 것들이지 결코 숭배(崇拜)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옛날에 기드온(Gideon)이라는 청년이 우상 숭배 때에 사용하는 제단과 목상(木像)을 때려 부수고 불을 질러 태워 버리니까 동민들이 몰려와서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사스(Joash)가 말하기를 “그것들이 만약 신(神)이라면 그 스스로가 쟁론(爭論)할 게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의 함축된 뜻을 석역(釋譯)하면 제 자신을 불태워도 말 한마디 못하는 그것이 무슨 화복을 주는 숭배의 대상이 되느냐는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Paul)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考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 (행 17:29)고 하였습니다.
또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요 17:3)는 말씀도 종교 신앙에 바른 신관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나타낸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가정에 가장이 한 사람, 학교에 교장과 총장이 한 사람, 나라에 국가 원수가 한 사람인 것처럼 우주와 만유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참 신(神)도 여럿이 아니고 하나님 한 분이심을(막12:29, 32, 딤전 2:5)믿고 경외 하십시다.
(2) 바른 종교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들 중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저급(低級)한 종교가 아닌 종교, 즉 만인에게 유익한 종교들인 그 교훈이 유사(類似)해 보이는 것도 많이 있어서 서로의 표현이 다를 뿐 종교란 모두가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사랑,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仁)이란 이기욕을 버리고 자기의 것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라는 교의(敎義) 등 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서고 싶은 곳에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내가 달성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이 달성케 하라는 성훈(聖訓)은 성경에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는 말씀과 상사점(相似点)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