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낭만적인 산책로이자 문화의 거리인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이화여고 동문이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주차장 한 모퉁이에 작은 표석이 놓여있다. “손탁호텔: 한말에 러시아에서 온 손탁(孫鐸)이 호텔을 건립, 내외국민의 사교장으로 쓰던 곳’이라는 내용이 그 안에 쓰여있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열강이 각축하던 숨가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담겨있는 곳이다. 이 호텔은 1909년 8월에 프랑스인 호텔경영업자 보에르가 이를 인수하여 ‘손탁호텔’로 신장개업했는데 그 이전에도 이미 서울의 외교계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이 운영하던 빈관을 손탁호텔로 통용되고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은 1885년에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따라 조선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알사스-로렌 지방 출신의 독일인으로 베베르의 처형이었다. 그때 그녀는 32세의 독신녀로 ‘미스 손탁’이라 불렸다. 그녀는 용모가 아름답고, 태도가 세련되었으며, 머리가 좋고, 수완이 뛰어난 여성이었음이 분명하다. 예술적 감각과 더불어 외국어에 능통했던 손탁은 서울 주재 외교관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었다.
개화기에 조선 정부는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과 수호조약을 체결한 후 궁중에서 외교사절을 접대하는 일이 많아지자 외국어에 능통한 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베베르 공사의 추천으로 손탁이 궁내부의 황실전례관이 되어 외국인 접대를 맡게 되었다. 이후 손탁은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서양요리를 제공했으며 고종은 손탁의 커피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 손탁은 요리뿐만 아니라 왕궁 인테리어에도 재능을 보였다. 손탁은 경복궁의 실내장식을 서양식으로 바꾸고 주방과 침전까지도 서양식으로 바꾸는 일을 주도했다. 명성황후는 서구열강의 소식을 재치있게 전달하는 손탁을 총애했으며 자주 접견했다.
그녀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러시아에 능통했고, 조선말도 익혀 구한말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 사절은 물론 조선의 왕족, 관리들과도 끈끈한 친분을 과시했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고종과 명성황후는 손탁에게 궁내부와 러시아 공사관 사이 사이를 접선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손탁은 일본과 청을 반대하며 조선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두 차례의 조·러밀약도 그녀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고 한다.
손탁은 명성황후에게 각종 외부 소식뿐만 아니라 서양의 역사와 제도, 음악과 미술에 대해 가르쳐주었고, 심지어 화장술까지도 관여했다. 그녀는 러시아제 화장품을 갖고 들어와 손수 명성황후에게 서양식 화장을 해주었으며, 황후는 서양식 화장을 한 자신의 얼굴에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친일내각이 들어선 후 고종과 명성황후는 손탁이 직접 조리하는 서양요리만을 안심하고 먹었을 정도로 그녀를 신임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손탁이 마음에 들어 요리나 연회뿐 아니라 외교-국제 문제에 대한 정보를 듣기도 했고 국내의 외국인 소식도 그녀를 통해 들었다.
1895년 고종은 손탁에게 정동 소재 왕실 소유의 가옥및 토지 1184평을 하사했다. 이는 청일전쟁의 과정에서 일본이 김홍집 친일내각을 구성하여 국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자 이에 대항하기 위한 고종의 포석이었다. 친일내각이 수립되자 손탁은 곧바로 러시아 공사관과 제휴하여 배일운동을 주도했다. 손탁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한옥 저택의 실내 인테리어를 서양식으로 장식하여 서양 외교사절들의 사교장으로 활용했다. 당시에는 아직 한성에 호텔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손탁의 사저에 머무르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다.
손탁의 배일운동이 성공하여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있게 되었고, 러시아 공관에 파천해 있는 동안 고종은 식사는 물론 모든 수발을 맡길 정도로 손탁을 신뢰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고종은 손탁의 사저에 서양식 벽돌 건물을 지어주었다. 1898년 3월 16일자로 된 ‘양관하사증서’에서 고종은 ‘노고에 보답하는 뜻’을 각별히 표시한다. 손탁은 이를 호텔식으로 개조했다. 따라서 본격적인 호텔 업무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손탁호텔에는 주로 한성에 오는 외국 국빈들이 머물렀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한성 방문이 빈번해지자 방 5개로는 협소하게 되었고, 이에 고종은 왕실 재정으로 이를 확장해 주었다. 1902년 10월에 2층으로 증축된 서양식 벽돌 건물이 준공되었다.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틴이 설계한 증축된 손탁호텔은 전형적인 러시아풍의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이었다.
손탁호텔에는 젊은 시절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묵었고, 시오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도 이용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호텔에 투숙하여 조선의 대신들을 불러서 회유하고 협박했다. 배일운동의 중심지가 을사늑약을 체결토록 하는 일제 강점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손탁은 한일합방 이전인 1909년 보에르에게 이 호텔을 매각하고 독일로 돌아갔다. 손탁은 일본에겐 눈엣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