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이 지었다는 ‘하여가’라는 시조가 있다. 고려 말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만든 시조라고 한다. 내용 중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는 대목이 있다. 이 내용으로 보면 칡넝쿨은 뒤엉키는 식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마음이 뒤엉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갈등’(葛藤)이라는 말도 ‘칡넝쿨과 등나무 넝쿨’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뒤엉키는 경향이 심한 칡넝쿨 때문에 미국 땅에서는 칡넝쿨이 골치 아픈 존재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칡넝쿨이 미국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동양에서는 칡뿌리가 유용하게 쓰인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냉면에 칡뿌리 가루를 넣어 칡냉면을 만들기도 하고, 칡뿌리를 말려서 차로 끓여 마시기도 한다. 이런 칡넝쿨이 미국 땅에서는 말썽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칡은 원래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 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이다. 미국에 칡이 전해진 것은 1867년의 일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독립 백 주년 기념 박람회에 일본이 칡넝쿨을 소개했다. 이 때문에 칡의 영어 명칭은 ‘Kudzu’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부르는 것이다. Kudzu는 칡이라는 뜻의 한자인 葛(갈)의 일본 발음이다. 칡넝쿨이 소개된 후 미국에선 처음에는 등나무처럼 정원을 가꾸는 데 쓰였다. 나무를 걸쳐 놓고 칡넝쿨을 올리면 훌륭한 그늘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콩과 식물인 칡은 단백질이 많고, 질소질을 스스로 만드는 능력도 있어서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므로 가축에게 매우 좋은 사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Civilian Conservation Corps’라는 토지 보존 단체의 눈에 띄어 토양이 빗물에 유실되는 것을 막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당국은 미국 전역에 칡넝쿨을 퍼트리기 시작하여 1946년에는 12만 에이커의 면적에 칡넝쿨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칡넝쿨은 왕성한 자생력으로 거침없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 특히 미국 조지아, 앨라배마, 테네시와 같은 동남부 지역에 많이 퍼졌다. 그래서 지금 조지아, 앨라배마 곳곳에서 칡넝쿨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다.
이 칡넝쿨이 토지 유실을 방지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왕성하게 퍼지는 칡넝쿨은 1년이면 웬만한 나무는 전부 덮어버린다. 칡넝쿨에 덮인 나무는 비실거리다가 대부분 몇 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그러자 당국은 이제 칡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1953년에는 토지유실을 방지하는 식물의 목록에서 칡넝쿨을 제외해 버렸으며, 1970년에는 칡넝쿨을 없애야 하는 잡초로 규정해 버렸다. 마침내 1990년에는 칡넝쿨이 해악을 끼치는 식물이라고 결정했다. 앞으로는 칡넝쿨의 박멸을 위해 애쓰겠다는 뜻이다. 현재 칡넝쿨은 미국 전역에 2천 만 에이커가 넘는 면적에 퍼져 있으며, 한 해에 30만 에이커 이상씩 번지고 있다고 한다.
칡넝쿨이 미국에 끼치는 손해는 일 년에 5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칡넝쿨 때문에 망가지는 전봇대를 고치기 위해 드는 비용은 한 해에 150만 달러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은 칡넝쿨을 박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는 칡넝쿨에 곰팡이를 번식시켜서 칡넝쿨을 죽이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칡넝쿨을 죽이는 데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어 적당치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이 방법은 동물에 많은 독성을 주게 되어 해를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밖에 곤충 혹은 곤충의 애벌레를 이용하여 칡넝쿨의 번식을 막는 방법도 이용하고,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이용하여 다 먹어치우게 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으나 어느 방법도 뾰족한 수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토지 유실을 막기 위해 도입한 칡넝쿨이 이제는 미국에 커다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차라리 한국 사람들에게 칡넝쿨을 채취하여 먹으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