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사] 인간의 삶과 ‘토정비결’
옛날에는 정초가 되면 나이 많은 노인들이 길거리에 하얀 천에다가 ‘토정비결’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행인들에게 “올 한해 운수를 보고 가라”고 외치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었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이라는 책을 통해 한 해의 운수를 알아보는 대표적인 세시풍속이었다. 토정비결은 조선 중기 무렵 학문과 여러 가지 기행으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이 지은 도참서로 개인의 사주 중 태어난 연, 월, 일 세 가지로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이용하여 일 년 동안의 신수(身數)를 열두 달별로 알아보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토정비결은 그 밑에 한 줄로 번역되어 읽기 쉽게 되었으며 다른 점서와 마찬가지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 많다.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라는 희망적인 구절이 많고, 좋지 않은 내용으로는 “여색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재화가 있다” “수재수가 있으니 물가에 가지 말라” “구설수가 있으니 입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 주로 개인의 길흉화복에 대한 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 사람도 희망을 품게 하고, 나쁜 일에 대해서는 미리 조심을 하면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도록 경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에 계속 의존하다 보면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반대로 힘든 일이 닥칠 때 미리 체념을 한다거나 쉽게 포기하는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다. 막상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은 자기가 다스리던 고을 백성들에게 직업훈련을 통해 이러한 사주팔자에 삶을 의지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방법을 제시해주었고 본인이 몸소 실천을 통해 본을 보이는 정치를 해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주팔자에 대해서 조선 초기 대학자인 서거정이 세조와 나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소개하겠다. 임금의 인간 백과사전이었던 서거정에게 사람들의 사주에 의한 운명 판단을 두고 세조가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생년월일시의 육갑을 순서대로 한데 모아 셈하면 각자가 타고난 사주는 51만 8천 4백 개 밖에 안 되는데 천하가 성할 때는 인구가 1천 500만에 이르는데 어찌 51만 8천 4백 개의 사주로 사람의 운명을 따질 수 있겠느냐”고 이론(異論)을 제기했다. “인구는 날로 늘어나는데 제한된 운명과 재수로서 천하의 인간 목숨을 판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신은 사주를 믿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세조도 그 말에 “그대의 말이 옳다.”고 했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해도 대단히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언제 무슨 일을 당하거나 죽을지 모르는 인간의 간절한 마음이 이러한 사주팔자나 주술과 점술을 의지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점술이나 사술을 죄악시하는 기독교에서도 운명론을 받아들여 ‘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이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자칫하면 이러한 것들에 속박되어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되므로 자신의 인생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새로운 한 해를 잘 계획하고 훌륭하고 보람 있는 결과에 이르도록 노력해보자.김태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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