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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아니고

New York

2018.02.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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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과 군자(君子)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사람입니다. 많은 종교와 철학은 성인과 군자를 목표로 정진합니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죠. 동양의 문화에서는 성인이 되는 것이 군자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힘든 일로 생각했습니다. 공자께서도 "성인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군자를 만나기만 해도 좋다 (이을호 역 '한글논어' 참조)"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성인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성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성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성인의 비슷한 말로 성자(聖者)가 있는데 두 어휘 모두 거룩한 느낌이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논어에서 "인격도 닦지 못하고, 학문도 부실하며, 옳은 일을 듣고도 행하지 못하고, 흠집을 고치지도 못하니 그게 내 걱정이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겸손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공자께도 늘 고민인 것이 성인이 되는 일이었던 듯합니다. 공자께서는 군자가 되는 일에 대해서도 "문학적 지식은 나도 남만 못하지 않지만,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것은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공자께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니 우리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한편 성인이나 군자로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성인이나 군자는 되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은 아닐지 모르지만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와 돈오돈수(頓悟頓修)의 논쟁은 이런 점에 주목한 논의일 겁니다. 깨달은 이후에 계속 닦아야 하는지, 아니면 깨닫고 나서 계속 닦으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이는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정의도 참 어렵습니다. 어쩌면 군자는 돈오점수하고 성인은 돈오돈수한 경지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오늘 공자에 대해서 자꾸 언급하는 것은 성인이나 군자가 공자께도 어려웠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거나 군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이에 대한 공자의 말씀도 역으로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공자께서도 마흔이 되어서 불혹(不惑)의 경지가 되었다는 점에서 안심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흔들리니 공자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공자께서도 마흔 전에는 불혹의 경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도 예순이 되어서야 남의 말을 순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공자께서도 일흔이 되어서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공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인군자(聖人君子)는 타고 난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는 겁니다. 우리말에 "우리가 성인군자도 아니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로 훌륭하지 않은 자신을 낮추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도 담고 있습니다. 실수투성이인 우리의 삶에서 변명이 되기도 하지만 안심을 주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성인군자라는 우리의 지향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선생 일을 하고, 글을 쓰면서 저는 글대로 말대로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용서를 말하지만 용서가 어렵고, 긍정적인 삶을 이야기하지만 긍정적으로 사는 게 참 힘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성인군자도 아닌데 당연하지"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설픈 구석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겁니다. 단지 앞으로 더 열심히 배우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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