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총선에서 두 후보를 유심히 봤다. 중앙일보 본국지가 투표를 며칠 앞두고 크게 소개했던 무명의 두 후보다. 경쟁 후보쪽에서 볼 땐 이런 편파보도가 어디 있냐고 항의라도 할 것같은 파격적인 편집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왜냐. 한 사람은 부산에서 출마한 민주당 후보였고 한 사람은 광주에서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부산 그리고 민주당 명함만 돌려도 당선되는 광주에서 각각 씨알도 안먹히는 정당 간판으로 출마한 '바보' 후보들이다. 물론 둘 다 떨어졌다.
부산 영도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해 낙선한 김비오(40) 후보. 김 후보의 집은 원래 남구인데 이왕이면 '고래'(?)를 잡겠다며 4선(이젠 5선이 된)의 한나라당 중진 김형오 의원과 맞붙었다.
질 게 뻔하지만 수만장의 명함을 뿌리며 막판까지 뛰었다. 팔장을 끼고 악수를 받지 않는 멸시도 숱하게 받았다.
김 후보는 정치인 김근태에 반해 4년 전 열린우리당에 가입했다. 장래를 위해 한나라당 간판이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당선을 위해 내 이념을 바꾸기엔 아직 젊다. 진심을 다하면 부산도 바뀔 것"이라고 했다. 득표율 9.5%.
광주 서갑에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낙선한 정용화(44) 후보. 서울대 하버드대 연구원 연대 교수 이명박 싱크탱크 전문위원 출신인 정권교체의 공신. 사흘을 울며 말리는 아내를 만류하고 "정치인은 시대의 과제를 짊어져야 한다"며 사지에 뛰어들었다.
정 후보는 말한다. "애당초 당선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호소하러 나갔다. (지역감정이)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갔다." 11.1% 득표.
적진에서 장렬한 전사(?)를 맞은 두 사람을 생각하면 '바보 노무현'이 생각난다.
노무현은 88년 부산에서 통일민주당으로 13대 의원에 당선됐지만 그후 지역감정에 정면승부하겠다며 10년 설움을 겪었다.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민주당에 잔류한 노무현은 92년 14대 총선에서 지역바람이 몰아친 부산에서 낙선했다. 이후 95년 부산시장 낙선 96년 15대 총선에서 종로 낙선 끝에 98년 종로 보궐선거로 겨우 원내에 진입한다. 10년 만이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 배지를 달았지만 그는 2000년 다시 지역감정을 타파하겠다며 '김대중당'(국민회의) 간판으로 16대 총선에서 부산을 다시 노크한다. 또다시 낙선.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 됐고 그 바보를 응원하는 '노사모'가 생겼다. 그 노사모가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한의학에는 음중지양(陰中之陽) 양중지음(陽中之陰)이란 개념이 있다. '음' 가운데 있는 '양'의 씨앗이요 '양' 가운데 '음'의 씨앗을 말한다.
낮(양)이 밤(음)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석양은 '양중지음'이다. 밤이 낮으로 가는 길목인 새벽은 '음중지양'이다. 이렇듯 음에서 양이 싹트고 양에서 음이 싹터야 자연이든 세상사든 제대로 돌아간다.
한국에서 동성애 커밍아웃으로 연예계에서 축출당한 홍석천. 아직도 동성애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했다. "계속 던지다보면 바위가 노랗게 변해서 계란처럼 보일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희망으로 삽니다."
김비오 정용화 같은 장한 낙선자들 그들이 던지는 계란이야 말로 지역감정이라는 어둠(바위)을 뚫고 빛을 내는 '음중지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