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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조슈아 벨의 딜레마

New York

2018.08.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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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초,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매년 여름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인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MMF)'의 초청 아티스트로 뉴욕을 찾았다. 그는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와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을 MMF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두 명의 슈퍼스타 연주자가 한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 이 음악회는 작년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마침 두 사람은 이 곡으로 영국의 유명 챔버 오케스트라인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 녹음해 소니 레이블을 통해 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음악회가 마친 후 사람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그 중 하나는 '브람스답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브람스는 바흐, 베토벤에 이어 독일 정통 음악의 계승자로서 중후하고 두터운 질감의 소리로 상징되는 작곡가이다. 그런데 이날 연주는 마치 몸에 붙는 트렌디한 옷을 입은 젊고 늘씬한 육상선수를 보는 듯, 가볍고 쉬운 음악처럼 해석되었다. 음향이 고약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에서 조슈아 벨은 자신의 소리를 홀 구석구석까지 힘있게 전달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브람스의 전형성을 탈피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일도 비판을 받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새롭고 창의적인 해석을 제안하고 청중을 설득하는 것이 성공적인 연주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연약하게 전달되는 두 연주자의 소리가 귀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오케스트라 역시 브람스의 곡을 연주하기에는 편성이 작은 편이었으나, 긴장을 쌓아 올려 비중을 늘려가는 방법 대신 가볍고 투명하게 무게를 털어내며 작품을 풀어나가는 전략 때문인지 인상 깊은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정확히 1년이 흐른 얼마 전, 올해 MMF에 조슈아 벨이 다시 초청되었다. 그는 또 한 명의 독일 정통 작곡가인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고 관객을 찾았다. 작년의 기억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는데 과연 올해는 어땠을까? 같은 장소, 같은 악단, 그리고 비슷한 스타일의 독일 작품이라 궁금증이 더 컸다. 무대 위에서 열린 연주 전 마지막 리허설을 참관했는데, 연습을 마친 후 악단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최나경(Jasmine Choi)은 이번 조슈아 벨의 연주가 어땠었는지 물어왔다.

작년과 비교해서 환경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별로 없었지만 올해 만난 조슈아 벨의 연주는 분명 달랐다. 그렇다고 소리를 힘있게 전달하기 위해 활을 더 눌러서 연주했다거나 소리를 짜내듯 힘을 가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정확하고 투명한 울림을 여전히 구사했고, 그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다. 솔로 바이올린 소리는 홀 구석구석까지 명료하게 뻗어 나갔고, 오케스트라 역시 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연주를 이끌어 갔다. 리허설 직후 질문을 던졌던 최나경 역시 필자와 비슷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작년 연주에 비해 올해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비슷한 스타일의 두 독일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했을 때 이 곡은 좋고 저 곡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 라이브 콘서트이다. 주로 기계의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팝음악은 장소에 큰 상관 없이 아티스트의 면모를 부각시켜 낼 수 있지만, 순간과 찰나의 경계에서 타협이 불가능한 클래식 음악은 그렇지 못하다. 연주 홀마다 울림 상태가 제 각각이고,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의 여부 등이 소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게다가 습도에 특별히 민감한 얇은 나무 판으로 이루어진 현악기 연주자라면 날씨까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여기에 연주자의 그날 컨디션도 감안을 한다면 시나리오는 더 복잡해진다. 연주자의 소리가 때마다 다르게 들리고 관객들의 감동도 제 각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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