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에는 ‘동성․양성애(LGBT) 코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요.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지난 20일부터 개막된 ‘제32회 샌프란시스코 LGBT 영화제’에 참석한 바바라 해머(69) 감독은 신작 ‘말은 은유가 아니다(A Horse Is Not A Metaphor)’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말은 은유가 아니다’는 난소암으로 힘겨워했던 해머 감독이 최근 완치 후 승마를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암’이 더 이상 사형 선고가 아니라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는 희망을 가져온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UCLA 심리학 학사, SF주립대 영화학과 석사 출신인 바바라 해머 감독은 세계적인 LGBT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99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등을 수상한 ‘역사수업’ 등 80여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SF LGBT 영화제와는 첫해부터 연을 맺어 단골 멤버로 자리 잡은 그의 행보가 바로 ‘레즈비언계’의 살아있는 역사라는 평이 있을 정도.
하지만 LGBT 영화감독이라는 점 외에도 바바라 해머 감독은 최근 수년간 한국과 가까워진 ‘지한파’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그의 다큐멘터리 ‘제주도 해녀(2007)’는 지난 4월 열린 서울여성영화제 주요 상영작의 하나로 소개됐다.
이 영화로 올 8월 제주도 국제 섬 영화제(Island Film Festival)에도 초청을 받은 상태다.
‘제주도 해녀’는 그가 처음 서울여성영화제에 참가했던 2000년대초 한국 관광책자에서 ‘제주도에서는 여성다이버(해녀)들이 가족을 부양했다’는 글귀를 보고 난 후 만들어진 영화다.
이때 4․3제주항쟁에 대한 설명도 듣고 ‘해녀’외에도 한국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예는 드물어 바로 촬영을 위해 해녀들을 만나러 갔다”며 “처음에는 ‘남파간첩’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해녀들과 지역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끝냈다”고 설명했다.
해머 감독은 이번 4월 방한중 손수 통역인을 구해 개성공단을 둘러보고 왔다.
그는 “지금까지의 인생관을 바꿀 만큼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자전거를 타고 있거나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뉴욕에서 거주, 이번 영화제 참석과 함께 25일 SF 시청에서 동성 배우자인 플로리 벌크(65)씨와 혼인신고를 마친 그는 “한국 방문중 느낀 것은 여성 및 레즈비언 인권 환경은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오히려 남성동성애자들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의 영화 ‘말은 은유가 아니다’는 27일 오후7시 록시필름센터(3117 16th St., San Francisco)에서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