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의학 용어에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는 단어가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자신을 포장한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사실인 양 믿게 되는 일종의 인격 장애 증상이다. 학력 위조 사건으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나 자신을 러시아의 공주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던 애나 앤더슨이 바로 이 증상의 주인공이다.몇 년 전 어떤 모임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나가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남아있는 회원을 나쁜 사람들로, 가해자인 자신을 오히려 피해자로 각색한 이야기를 퍼뜨렸다. 더구나 학력도 경력도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부풀려져, 어떤 이는 저 부부의 지나간 직업은 손가락 다섯 개로도 모자란다며 혀를 내두른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이해를 해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LA 한인 사회는 한 다리 건너 두 다리만 되어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민 생활 이후에 만들어진 스토리에 한해서다. 동창이나 고향의 동네 사람이야 상관이 없지만 그러지 못한 만남은 백지상태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던 이민 선배의 말을 이제야 절감한다.
사실 사람의 사귐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을 때는 나쁜 사람이 없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겨야 본색을 드러낸다. 서로 흉허물없이 주고받았던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거나 잠깐의 친했던 인연을 이용하여 억울한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입을 크게 벌려 말하는 사람이 정의고 침묵하는 사람은 불의다. 요새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난다.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 갈 인연을 구별하지 못하고 헤프게 인연을 맺으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는다. 사람에게서 받는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라고 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저술한 중국 작가 쑤지엔쥔은 친구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설명했다. 1) 고난과 기쁨을 함께하는 진실한 친구. 평생 우정을 쌓아라. 2) 사업상 시너지 창출을 위한 신뢰와 지원 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된 친구. 함께 사업을 하라. 3) 문화와 취향이 맞아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오락 친구. 자주 만나지 마라. 4) 향락 추구를 함께 하는 술친구. 자제하라. 5) 도움이 될 때만 다가오는 이해타산적인 친구. 절교하라. 6) 온갖 미사여구와 가식적인 감정으로 환심을 사는, 상대방을 꼼짝 못 할 정도로 다정다감하고 친절하나 관계가 형성되면 악용하는 친구.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라.
인간관계에서 짝의 법칙(Couple)이 있다. 나와 통하는 사람과는 저절로 친해지므로 인간관계를 의도적으로 엮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리플리 증후군 때문이든 무엇이든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얼굴로도 변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것도 축복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성민희 / 수필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