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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의 인도 여행-(4)] 푸자(Pooja) 의식

New York

2008.07.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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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성스러운 갠지스강
약 3500년 동안 힌두교도의 성지로 군림해 왔으며 인도의 종교와 문화의 수도로 불리는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기도 전에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일몰 후에 열리는 '푸자(Pooja)' 의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푸자는 신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힌두교도들이 매일 행하는 의식으로 집에서 하는 간단한 제식에서부터 사원에서 행해지는 복잡하고 장중한 제식까지를 포함하는 일체의 힌두교 의식을 일컫는 말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시내 큰 도로에서 내려 릭샤(Rickshaw)로 갈아 탔다. 릭샤는 천이며 옷가지며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불을 켜고 성시 중인 시장 속 차도를 통과했다. 차도는 말 그대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릭샤 관광객 인도인들로 가득 차서 아수라판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 소용돌이 속을 릭샤 운전수들은 용케도 비켜가며 얼마나 잽싸게 요리조리 잘 달리는지 가슴이 철렁철렁하면서도 감탄스러웠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길 위의 그 소용돌이치는 먼지들. 사람과 동물의 분뇨가 아무렇게나 공존하는 길과 그런 길 위로 달리고 있는 온갖 교통수단들의 매연 곳곳에서 피우는 향 타는 연기들 거기에 황토색 흙먼지까지 회오리처럼 몰아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마이크를 통해 여기저기서 울려오는 기도 소리 주문을 외우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오토바이의 붕붕 소리 동물과 인간의 목소리까지 한데 뒤엉켜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헷갈리고 정신이 몽롱해지기까지 했다.

경이.신비의 마력

수많은 사람들이 물결치는 갠지스강에 도착했을 땐 이미 푸자 의식은 시작되었다. 푸자 의식은 해가 진 후부터 약 40~50분간 진행된다. 의식이 진행되는 가트(ghat.강가의 층계) 주변엔 사람들이 꽉 차 있고 검게 출렁이는 강에도 사람들을 태운 수십 척의 배가 떠서 장관을 이루었다.

강을 향해 있는 제대는 모두 7개였고 뒤에는 3명의 악사들이 앉아 있었다. 제대 위로는 우산 모양의 네온이 열 개나 켜져 있어서 제대를 밝혀 주었다. 각 제대 위엔 황금색 인도 바지와 자줏빛 상의를 입은 수행자들이 의식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왼손으로 종을 흔들며 오른손엔 향이 타고 있는 향로를 들고 팔을 들었다 내렸다 돌렸다 하다가 다음엔 불나무를 들고 사방을 순서대로 돌아가며 두 손을 높이 들었다가 동그라미 그리기를 반복했다. 불 예식의 절정은 큰 향로에 불을 붙여 그것을 좌우로 흔들며 돌리는 의식이다.

우산 모양의 네온이 켜져 있는 10개의 기둥엔 각각 2개씩의 종이 달려 있어서 긴 줄로 그 종을 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종치기가 끝나자 꽹과리를 울리면서 불 예식이 끝났고 그 다음은 물을 뿌리는 예식이 마지막은 꽃 예식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람들은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에 맞춰 기도하고 박수를 치며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를 맡아 자신을 정화시키기도 하고 소원을 빌며 강에 촛불을 띄우기도 한다고 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향불 연기와 강 위에 앉은 물안개로 희뿌연 밤바다 위에서 진행되는 푸자 의식을 보면서 뭔가 신령한 기운이 몸에서 느껴졌다.

그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본 인도는 인도가 아니고 이제 비로소 인도에 왔다는 느낌 이것이 바로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도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 지금까지 여행의 불편함에서 오는 사소한 불만으로 인도에 대해 품었던 폄하 혹은 부정적이었던 인상들이 어느 순간 눈 녹듯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경외와 경이와 신비의 마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환각처럼 부유를 거듭하던 그런 기분은 다음날 새벽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러 다시 새벽 강가에 갔을 때 더욱 선명해졌다.

한쪽에선 주검이 불타고

'갠지스강'은 영국인들이 붙인 이름이고 힌두어로는 '강가'라고 부른다. 인도 사람들이 강가강을 '성스러운 강'으로 믿는 것은 그들이 숭배하는 힌두교의 시바신이 살고 있는 티베트의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흘러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가강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으며 죽어서 그 뼈를 강에다 뿌리면 극락왕생한다고 믿는다. 시바가 해탈을 약속한 축복의 강이기에 그들은 죽으면 화장해서 강물에 그 재를 뿌리고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며 또 그 물을 떠다 마신다. 힌두교 고전에도 '우주의 탄생은 바라나시에서 시작되었고 바라나시를 만든 이는 시바신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몬슨 시기엔 강물이 계단 위까지 찬다고 한다. 강줄기를 따라 지어진 건물들은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빨래터엔 돌이 주욱 놓여 있었다. 빨래를 하는데 뭍에서 강을 바라보고 하는 게 아니라 강물 중간에 서서 뭍을 바라보며 하는 모습이 내 눈엔 생경스러웠다. 상술에 밝은 인도인들이 어느새 배를 타고 다가와 방생하라며 물고기를 내민다. 세 마리에 2달러이다.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했다. 고요한 강 위로 빨간 햇살 한 줄기가 뻗치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둥근 해가 붉은색으로 강을 꽉 채웠다. 화장터에 이르니 높이 쌓아놓은 땔나무들 사이로 아직도 타고 있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죽음과 파괴의 신인 시바신이 손바닥에서 만든 불이 3500년간 꺼지지 않은 채 타고 있다고 믿는다. 화장터의 불씨도 300년 된 것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쪽 화장터에선 주검이 불타고 있는데 저쪽에선 해가 뜨는 하나의 강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생과 사. 참담한 이 현실 앞에선 인생무상이라는 말도 종교며 철학이라는 단어들도 무용지물처럼 생각되었다.

아무 일도 없는 듯 무심하게 흐르고 있는 강물을 바라보니 그 곳에서 함께 흘러가는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시간과 공간 욕망과 집착 천당과 지옥 아름다움과 추한 것 등등 복잡한 하모니로 머리에 쥐가 나게 하던 모든 의식의 사슬로부터 '내려놓여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황사처럼 회오리치던 그 몽롱했던 뿌연 도로 화장터에서 맡던 야릇한 냄새 그런 모든 그곳의 일상들이 아직까지도 꿈 속처럼 아슴푸레하다. 뭔가 우리 인간의 삶의 근저를 보고 체험했다는 인식은 있으나 그것의 확실한 정체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러한 암묵적 의문 속에 인생은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

〈계속>

수필가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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