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에선 20세기 최고의 여성 화가중 한 명이며, 특히 페미니스트에게 20세기 여성의 영웅으로 꼽히는 프리다 칼로 (Frida Kahlo)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9월28일에 막을 내리니 그 전에 꼭 관람할 것을 권하고 싶다.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최고 명문인 국립 예비학교를 다니며 의사를 지망하던 그녀는 열여덟 살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는다. 그 후유증으로 4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나중엔 모르핀으로도 그 통증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가 꼽는 일생의 큰 사건 두 개 중 하나는 그 교통사고였고, 두 번째는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와의 만남이다. 디에고는 멕시코 화단에서 3대 거장의 하나로 꼽히는 화가로 국제적인 명성도 대단한 혁명 벽화의 대가다. 공산당원인 그는 끝모를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에게 섹스는 악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라고 하였다. 심지어는 프리다의 친동생과도 관계를 가진 디에고로부터 받은 프리다의 정신적 고통은 교통사고로 인한 육체적 고통보다 더 컸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다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건 아니다. 디에고의 무절제한 여성 행각에 질세라 자기도 뭇여성, 뭇남성과 관계를 가졌다. 러시아 혁명의 대표적 인물인 트로츠키와의 염문은 유명하다.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 멕시코로 망명한 트로츠키가 프리다의 친정에 머물던 중 생긴 일이다.
일자 눈썹에 콧수염이 거뭇거뭇한, 자그마한 장애인이 세기의 거물들을 사로잡는 걸 보면 프리다가 뿜어낸 포스는 대단했나 보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결혼했다, 이혼했다, 다시 결혼하며 25년 간을 지냈는데 서로를 사랑한 것 이상으로 고통을 주고, 또 그러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영화는 고통으로 점철된 프리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 때마다 탄생한 그녀의 그림을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디에고를 만난 후 그린 (둘이 손잡고 있는) 디에고와 프리다, 디에고와 헤어진 후 그린 (잘린 머리카락이 사방에 널려 있는)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화장을 원한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자신이 죽어서 누워 있는 침대가 불에 휩싸인) 꿈, 이런 식이다. 이런 그림들을 SF MoMA에 가면 다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은 대비가 된다. 디에고의 그림은 농민과 노동자를 주요 소재로 하고 혁명을 주제로 한 힘이 넘치는 외향적인 그림이 주를 이룬 반면, 프리다는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을 통해 본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여류 감독 줄리 테이머는 프리다의 삶과 예술을 잘 정리, 정돈해 보여준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프리다의 일생을 교통사고와 디에고 -즉,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 이 두 가지로만 요약해 깔끔한 반면, 또 다른 부분에 대한 할애가 전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디에고가 뉴욕으로 진출할 때를 묘사한 꼴라쥬 기법, 디에고가 록펠러 벽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때 킹콩을 통해 보여준 만화 기법, 그림이 실사로 변하고, 그림이 눈물을 흘리는 등, 다양한 화면은 영화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프리다로 분한 샐마 헤이엑과 디에고로 분한 앨프리드 몰리나가 꽤나 그럴 듯하고, 그 외에 애쉴리 저드, 제프리 러쉬, 안토니오 반데라스, 에드워드 노튼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2003년 아카데미상에서 분장상과 작곡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