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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남한말과 북한말, 그리고 통일

Los Angeles

2018.11.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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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국수(라면), 머리물감(염색약), 무더기비(호우), 공기갈이(환기), 갑작부자(벼락부자), 손가락말(수화), 남새(채소), 물고기떡(어묵), 가루젖(분유), 차마당(주차장), 거리나무(가로수), 사이밥(간식), 잊음증(건망증)….

북한에서 쓰는 우리말이다. 괄호 안의 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다. 둘을 비교해보면 재미도 있고, 느끼는 점도 참으로 많다. 글쟁이인 내가 보기에는, 북한 것이 순우리말에 가깝고 정겨운 경우가 많아 보인다.

한자로 된 어려운 낱말을 순우리말로 바꿔 쓰는 자세도 고맙고 믿음직스럽다. 외래어도 되도록 우리말로 고쳐서 쓰려고 애쓴다.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넘쳐나는 우리와는 형편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다이어트는 살까기, 스마트폰은 지능형 손전화기, 네티즌은 망시민, 도넛은 가락지빵, 아이스크림은 얼음보숭이, 미니스커트는 동강치마, 원피스는 외동옷, 투피스는 나뉜옷, 스타킹은 살양말, 넥타이 목댕기 등등 정감이 간다.

손기척(노크), 뜻빛갈(뉘앙스), 기름사탕(캐러멜), 밥상 칼(나이프), 밤사교구락부(나이트클럽), 살결물(스킨로션), 건발기 (헤어드라이어), 사자고추(피망) 등도 재미있다. 알맞은 우리말을 찾기 위해 애쓴 노력이 실감으로 전해진다. 우리가 그대로 채용해도 좋을 정감어린 말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니, 북한은 정권수립기인 1949년부터 한글전용정책을 시행하였고, 한자말과 일본말을 고유어로 바꿔 쓰는 방침을 시행해왔다고 한다. 이어서 1966년에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평양말을 표준어로 제정하면서 '문화어'라 명명하고,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말다듬기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른바 '문화어 운동'이라는 어학 혁명이었다.

당시 김일성은 그때까지도 표준어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서울말에 대해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섞인 잡탕말'이라며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우리말다듬기사업'은 1980년대 중반까지 20여 년 동안 진행되었고, 그 결과 많은 한자어들이 다듬어지고, 고유어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바람에 남북한에서 사용하는 말이 많이 달라졌고,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은 깊어졌다. 게다가, 분단 70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사회 체제나 생활환경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언어도 당연히 달라졌다.

흔히 "우리는 같은 말을 쓰는 한 겨레"라는 사실을 자랑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남북한의 언어는, 비록 말의 뿌리는 같아도, 이질감이 매우 크다. 가령 북한에서는 한글을 '조선글'이라고 부르고, 표준어를 '문화어'라고 한다. 우리의 한글날은 10월9일인데 비해, 북한에서는 1월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모를 생소한 낱말도 무척 많다. 아마도 우리의 초등학생과 북한의 어린이가 이야기를 나눈다면 잘 안 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 않을까?

통일 열기가 구체적으로 익어가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겨레 사이에 흐르는 말부터 통일해야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알 테니까.


장소현 /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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