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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칼럼] '머리 올리는 날'

New York

2018.11.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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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의 오랜 골프 구력이면서 실력 또한 싱글 디지트 핸디캡퍼(Single-Digit Handicapper)인 한 지인이 "나는 요즘 실력이 비슷한 동료들과 함께 하거나 중요한 게임 약속이 있는 전날 밤엔 생전 처음 필드에 나가는 초짜 골퍼처럼 잠을 설치는 바람에 그날 스코어가 엉망이 된다"며 자신의 멘탈 문제에 관한 고충을 피력하는 것을 보았다.

골프 인생(경력)에서 가장 마음이 설레고 흥분되었던 특별한 날을 골퍼들에게 손꼽아 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애 처음 필드에 나섰던 날 소위 '머리 올리던 날' 이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 골프장 필드에 나가기 전날엔, 첫번 홀부터 헛손질 하고 공이 빗나가면 어떡하지? 연습 하던대로 7번 아이언이 잘 안 맞으면? 드라이버 연습을 더하고 나가야 하는것은 아닌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이런저런 세세한 궁금증 때문에 불안감이 밀려 오면서도, 혹시나 골프 재주가 남 다르게 특출해서 몇 년 후엔 내가 유명한 프로 선수가 되는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하고 허황된 상상까지 하며, 그저 마냥 마음이 설레이고 흥분되어 싱숭생숭하던 그날은 마치 어린시절 소풍가던 전날 밤이나, 결혼식 전날에 밤잠을 설치던 추억과도 매우 흡사하던 그런 경험을 골퍼들은 잊지 못한다.

필자가 골프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군대 복무시절, 높으신 분의 시중을 들어주는 속칭 따까리(당번병)로 근무할 때다. 주말 오후 어둑 어둑한 연병장 끝 한구석에 자리잡은 영감님께서 희한하게 생겨먹은 긴 밥주걱 같은 나무채로 사정없이 골프 공을 후려 갈기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공을 줍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연병장 구석구석을 헤매던 추억이 있다.

집무실에 돌아온 영감님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면서 "내일 자네 친구 머리 올려 줄려고 방금 전에 몸을 좀 풀었지!"라고 말한다. 전화 내용을 엿들으며 귀를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골프장에서 무슨 머리를! 누구의 머리를 올려 준다는 것일까? 골프장 필드에서 누구의 주례를 선다는 것일까? 아니면, 골프가 끝난 후 마누라 몰래 기생 집으로 샌다는 말일까? 참으로 희한하고도 수수께끼 같았던 영감님의 전화 말씀 '머리 올리는 날'의 뜻을 내가 알게된 것은 십수년이 지난 후 직접 골프를 배우면서다. 그러니까, 골프를 처음으로 접한 초보자가 연습장에서 나름 여러 방법으로 어느정도 기본기를 가다듬고, 스윙 기술도 연마하여 각고 끝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난생 처음 골프장 필드로 공을 치러 나가는 날을 머리 올리는 날로 지칭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많은 골프 은어나 용어들 중에서도 머리 올리는 날이라는 용어는 전 세계에서 우리 한국사람들만이 유일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이 용어의 사전적인 어원이나 유래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 골퍼들이 '머리 올리는 날'을 골프장 필드에 나가는 '첫 날'이라는 의미로 표현하고 사용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옛날 조선시대의 기녀들이 상당기간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예절과 기예를 익힌 후에 초짜 기생이 되는 첫 날을 '머리를 올리는 날'이라 했는데, 그런 풍습을 본따서 흉내 냈거나, 우리네 전통적인 결혼식 날 남자와 여자가 첫 날 처음으로 머리를 틀어 올린다는 관습을 모방해서 골프장에서 '첫 번째' 라운드라는 의미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짧은 견해다.

실제 취미삼아 하는 운동 치고는 '첫 번째' 실전까지 상당 기간동안을 체계적인 연습과 정성을 들여야하고 예절은 물론 룰.에티켓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 골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은어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정철호 / 골프 칼럼니스트.티칭프로 Class 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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