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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제비집과 벌집

Chicago

2008.08.2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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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례/작가ㆍ오하이오
딸네 집에서 몇해 동안 더부살이 하다가 작년 봄에 컨더미니엄을 새로 짓고 살림을 났다. 마치 시집살이 하다 살림난 신혼부부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주변 사람들도 우리 마음을 짐작했음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한다.
심지어 “신접 살림이 어떠냐?”고 짓궂게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럭저럭 1년여란 세월 동안 대답하는게 궁색하게 느껴지다가도 과히 불쾌하게 생각되지 않음은 어인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뭏든 우리는 자그마한 뜰에 꽃밭과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사철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무엇보다도 잔디 깎을 필요가 없고 눈 치울 필요가 없어 홀가분했다.

그런데 금년 초여름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제비들이 현관 위에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었다. 제비라고 하면 다른 새와 달라서 우선 친근감이 생긴다. 마치 먼 고향 하늘로부터 날아 온 것 같아 반갑게 느껴진다. 또 ‘흥부와 놀부전’을 떠올리게 해서 다분히 감상적이게 한다. 그래서 ‘함께 살아 보자꾸나’ 하고 말하고 싶지만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 문을 열면 제비똥이 떨어져 있는 게 보기싫다. 남편은 우리 집의 더러운 것 치우는 사람이라서 긴 호수로 한바탕 씻어내고서야 아침을 먹든가 커피를 즐기곤 했다.

하루는 귀찮아서 제비집을 없애버려야겠다는 남편에게 일거리가 생겨 심심하지 않지않느냐고 농을 했다. 그러면서,“혹시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줄지 누가 알아요? 너무 푸대접일랑 말아요.” 했다.
“다리가 부러져서 떨어져야 박씨를 물어 오지?”
생각이 이어지는 게 재미 있어서 나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참, 그렇군요. 어쩌나! 놀부처럼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릴 수도 없구.”
이렇듯 우리 내외는 미적미적 날마다 호스물을 뿌리며 며칠을 보냈다. 그런 어느 날 지붕수리하던 일군이 왔다가 간곡하게 부탁도 안했는데 고맙게(?)도 제비집을 떼어주고 갔다.

남편은 일거리가 없어져서 편했지만 뭔가 허전함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뒷뜰의 잔디를 깎던 분이 들어와 이번에는 우리 집 벽난로 밑에 벌집이 있다고 알려주고 갔다.
우리는 당장 딸 집에 가서 벌 죽이는 스프레이를 얻어 왔다. 남편은 깡통에 쓰여 있는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막 빨수 있는 코트에 귀까지 덮는 겨울 방한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고무 장갑과 가죽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했다.
“어디 전쟁터에 나가요?”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았다.

남편은 긴긴 여름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잔디밭에 앉아 벌들이 하나 둘 집을 찾아 날아드는 것을 헤어보고 있었다. 이윽고 해가 지고 어둑해지자 총대를 멘 남편이 들어왔다.
그러나 남편은 난생 처음 살인이라도 한 사람처럼 입맛이 씁쓰레 했나보다. 아침 저녁으로 몇 차례 약을 몇 번 더 뿌려야 한다고 했으나 다음 날 아침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저녁까지 기다려야 만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자다가 윙윙 하는 벌떼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떴으나 방안에 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자 나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웬일인지 벌이 몇 마리나 죽었을까, 궁굼해 하지도 않고 우리는 더 강한 스프레이를 사야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빌더의 감독자가 왔다. 그동안 지붕수리 했던 걸 검사하기 위해서, 또 우리 딸이 벌집이 생겼다고 연락해서 왔다고 했다.
그가 지하실은 어떤가, 하고 내려갔다가 고함을 질러 우리는 물이 들이찼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뛰어 내려갔다.
이게 웬 일인가. 어림잡아 200여 마리의 벌이 죽어 있었다. 빌더는 비를 맞으면서 벌이 들어갈만한 작은 구멍들을 컬킹해주고 갔다.
이틀 동안의 전쟁은 일방적으로 휘두른 총뿌리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남편은 조금도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지 바보처럼 오히려 “죄의식 같은 걸 느낀다”고 툴툴거리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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