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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저혈압 슬픔

New York

2018.11.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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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불쌍해지기 시작한다

흐린 하늘이 보이도록 블라인드를 올려놓고

웅크리고 누워 생각한다

동네에서 잔디 깎는 기계소리만 요란한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출근 차량 소리가 드문드문

간혹 비가 온다는 기온이 뚝 떨어질 거라는 간절기

기다림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멀리 반짝이는 등대불에 조금 다시 설레여 보기도 한

내가 안쓰러워지는 화요일 아침

모두 나처럼 이상한 화요일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황동규 시인은 저체온 슬픔이라고 했다

숨이 죽은 채로 살아온 내 젊은 날은 저혈압 슬픔

가끔씩 내가 숨을 깊이 쉴 때는 녹슨 철근 냄새가 났다

외로움. 크게 뿜어내지도 길게 몸부림치지도 못했지

털어낼 엄두를 못 내고 가만히 덮고 살았다

반짝이는 것이 부끄러워 그늘로만 골라 다니던

시절이 이제 와서 안타깝지만

나이 들어 혈압이 정상치로 올랐으나

여전히 두르고 사는 이 쓸데없는 것에 대한

낭만은 저혈압 슬픔이다

외로움이라는 말, 그리움이라는 말, 꿈이라는 말이

덜 어색하고 과분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갱년기 지나 혈압이 오른 탓이다


김가은 / 시인·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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