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저혈압 슬픔
오늘은 내가 불쌍해지기 시작한다흐린 하늘이 보이도록 블라인드를 올려놓고
웅크리고 누워 생각한다
동네에서 잔디 깎는 기계소리만 요란한
아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출근 차량 소리가 드문드문
간혹 비가 온다는 기온이 뚝 떨어질 거라는 간절기
기다림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멀리 반짝이는 등대불에 조금 다시 설레여 보기도 한
내가 안쓰러워지는 화요일 아침
모두 나처럼 이상한 화요일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황동규 시인은 저체온 슬픔이라고 했다
숨이 죽은 채로 살아온 내 젊은 날은 저혈압 슬픔
가끔씩 내가 숨을 깊이 쉴 때는 녹슨 철근 냄새가 났다
외로움. 크게 뿜어내지도 길게 몸부림치지도 못했지
털어낼 엄두를 못 내고 가만히 덮고 살았다
반짝이는 것이 부끄러워 그늘로만 골라 다니던
시절이 이제 와서 안타깝지만
나이 들어 혈압이 정상치로 올랐으나
여전히 두르고 사는 이 쓸데없는 것에 대한
낭만은 저혈압 슬픔이다
외로움이라는 말, 그리움이라는 말, 꿈이라는 말이
덜 어색하고 과분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갱년기 지나 혈압이 오른 탓이다
김가은 / 시인·뉴저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