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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긴장(緊張)과 긴-장(緊腸)

New York

2018.11.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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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弛緩)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혹시 긴장의 장이 장(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緊)의 의미가 얽히고 움츠려들었다는 뜻이므로 장은 혹시 몸 속의 장이 아닐까 궁금했습니다. 긴의 의미는 긴축(緊縮)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런데 장의 의미는 무얼까요? 물론 저 역시 우리 몸 속의 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장을 하면 장이 괴로운 경우가 많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기에 사전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긴장의 장이 몸 속의 장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제가 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긴장을 하면 소화기능이 마비됩니다. 마비(痲痺)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자주 체하고 장운동이 멎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심인성(心因性)'이라는 표현을 쓸 겁니다. 마음에 원인이 있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어릴 때부터 심인성 위장병이라는 말에 큰 공감을 하였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면 속이 쓰리고 장이 뒤틀리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경련을 느끼기도 합니다. 장의 기능이 나빠져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기도 합니다. 괴로운 일이지요. 아마도 제가 지나치게 예민하기에 생기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가능하면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특히 중요한 강의는 저의 긴장도를 최대로 올립니다. 강의를 앞두고 식사를 하면 위험할 때가 많습니다.

오전에 강의가 있으면 다행인데 오후에 강의가 있으면 더 괴롭습니다. 점심까지 제대로 못 먹기 때문입니다. 대학 강의는 벌써 25년 정도를 하고 있음에도 강의가 있는 아침이면 긴장도가 올라갑니다.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됩니다. 강의 준비가 안 된 것도 아닌데도 강의 있는 아침에는 긴장이 시작됩니다. 종종은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머릿속에서 강의의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어떤 질문을 받게 될지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물론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될 겁니다. 긴장은 스트레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트레스는 일을 빈틈없이 만들기도 하고, 성과를 이루게도 합니다. 스트레스도 정도의 문제일 겁니다. 지나치면 문제가 되겠죠. 스트레스(stress)라는 말이 누른다는 의미이니 긴장과 비슷한 점이 있네요. 너무 눌려있을 때의 기분이 스트레스일 겁니다. 답답하고 숨을 못 쉬는 느낌일 겁니다. 사람과 일에 눌려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한편 긴장은 '팽팽한 긴장감'이라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곧 끊어질 듯 아슬아슬합니다. 내장 기관의 경우라면 수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느낌일 겁니다. 아시다시피 긴장이 지나치면 줄이 끊어집니다. 활시위를 너무 세게 당겨서 줄이 끊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긴장을 적당히 해서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외국에 강의를 갔습니다. 소화가 안 되었습니다. 강의하는 것은 즐거운데. 강의 전까지 느끼는 긴장과 스트레스는 괴롭습니다. 긴장의 장이 몸속의 장(腸)으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 그건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현용 / 경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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