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인 중에 성직에서 일찍 은퇴한 후 지리산 근처에서 농사짓고 양봉하며 전원생활을 하는 고등학교 후배가 있다. 최근에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이런 걸 읽었다. 그의 부인이 어금니 두 개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러 집 근처 가까운 군 내의 치과의사를 찾았다. 의사가 잇몸을 절개하고 나서 임플란트 심을 잇몸뼈가 녹고 얇아서 자기 치과에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잇몸을 다시 꿰매 놓고 자기가 아는 도시의 큰 병원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 좀 황당한 일이라 집에 돌아와서 다른 치과의사에게 알아보니 이런 경우에는 미리 CT 촬영을 하는 것이 순서인데 시골 병원에 그런 비싼 장비가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치과가 다 같은 치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라고 그 후배는 말한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나는 그 치과 의사의 시술이 과일 가게에서 익은 수박이나 참외 고르려고 칼로 잘라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 ‘fishing expedition’이나 상황에 따라 대처한다는 ‘play it by ear’라는 말도 떠오른다. ‘fishing expedition’은 우리 말로 ‘낚시 출정’인데 그냥 낚시질 가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잡힐만한 곳을 이곳저곳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어디서 고기가 물을지를 모르니 여기저기 낚싯줄을 던져 봐서 잘 무는 데를 찾아내 고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탐색작전인 셈이다. 인체를 다루는 일을 과일 고르거나 낚시질하듯 한대서야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 의사의 ‘째고 보자 식 낚시 출정’은 비양심적인 우매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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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가 돌팔이가 아닌 바에야 CT 검사를 몰랐을 리 없다. 그는 최첨단 의료 장비가 있는 세상에서 잇몸 상태를 맨눈으로 점검하려고 불필요한 예비수술을 한 셈이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잇몸에 메스를 갖다 대기 전에 큰 병원으로 의뢰함이 바른 일이었을 것이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그 치과의사의 고기잡이 출정에 불필요한 피해를 본 환자가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하물며 인체를 다루는 의료 시술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의 30년 전 일이지만 내 선친의 간암 수술 때 개복해 놓고 너무 전이가 심해 안 되겠다며 그대로 봉합했던 의사 K의 후안무치와 무능력에 대한 분노가 새삼 되살아난다. 그때 그 수술을 받지 않았으면 아버님의 말년이 덜 고생스러웠을 것이고 좀 더 사셨을 거라는 내 생각은 수술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양심적인 의사들의 과잉 진료, 진료 사기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불필요한 치료를 하거나 멀쩡한 생니를 뽑는 등의 행위로 100여 명 환자의 치아와 잇몸을 망가뜨린 돌팔이 치과의사가 중형을 선고받고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일도 있었다. 요 몇 해 한국에서는 비양심적인 치과 진료와 바가지 치료비가 사회 문제가 되다 보니 치과의사의 양심선언도 있고 이런 비리를 파헤치려는 TV 프로도 나왔다. 나는 모르고 있던 ‘양심 치과’라는 신조어가 유행이고 환자 피해를 줄이려는 ‘우리 동네 좋은 치과’라는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주동이 된 캠페인도 있다. 착한 가격에 양심적이고 성실한 진료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작정 치료비를 할인해 주고, 싼 재료만 골라 쓰고, 환자의 전체적인 구강 환경을 위한 적극적인 교정치료보다는 단순한 ‘유지보수’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양심 치과라면 남들이 자기를 비양심적 치과의사라고 불러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의사도 있다. 치과 진료의 육안 검사, 방사선 검사의 장단, 호불호를 놓고도 논란이 뜨겁다. 이런 혼돈 속에서 진짜 비양심적인 치과의사에게 희생되는 무고한 환자의 수는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