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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칼럼] 새해의 다짐 ‘연두교서’

Atlanta

2019.01.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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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해마다 새해가 되면 새해의 다짐을 한다. 영어로는 ‘New Year’s Resolution’이라고 한다. 담배를 끊겠다던가, 술을 덜 마시겠다던가,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겠다던가 등등 새해의 포부를 밝힌다. 국가에도 이와 비슷한 다짐이 있다. 국가의 우두머리가 국민을 향해 새로 맞이하는 일년 동안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State of the Union’이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연두교서’ 혹은 ‘국정 연설’이라고 번역한다. 여기서 ‘State’는 ‘현황(상태)’라는 뜻이고, ‘Union’은 ‘미합중국’이라는 뜻이다. 해마다 1월말 무렵에 상원과 하원의 국회의원이 모인 곳에서 대통령이 국정에 관해 연설하는 것이 바로 ‘State of the Union Address’이다.

요사이 연방 정부 업무 정지(Government Shutdown) 사태로 인해 2019년도의 연두교서는 갈 곳을 몰라 헤메고 있다. 대통령과 하원의장이 서로를 향해 기싸움을 하는 바람에 언제 어디서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소용돌이 도중에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 형식적으로는 하원 의장이 대통령에게 ‘State of the Union Address’를 해달라고 요청해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하원 의장이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것이므로 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하원 의장의 권한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하원 의장이 대통령에게 연두교서를 발표하러 오려면 정부 업무 정지를 끝낸 후에 오라고 해서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정치는 가끔 어린아이들 다툼처럼 유치찬란할 때도 있다.

연두교서(국정 연설)의 역사는 영국에서 시작했다. 영국의 의회를 연초에 개원할 때 국왕이 교서를 낭독하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본떠 1790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 때부터 시작했다. 연두교서는 미국의 헌법에 근거한다고 해석한다. 헌법 2장 3조에 “대통령은 때때로 의회에 출석하여 국정의 포부를 밝힐 수 있다”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제2대 대통령까지는 대통령이 몸소 매년 의회에 나가 연설을 했지만,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때부터는 연두 교서가 왕정의 잔재라고 생각해서 대통령이 몸소 출석하지 않고, 그 대신 서면으로 의회에 연설문을 제출하여 국회 사무국 직원이 대독하는 전통이 생겼다. 그러다가 1913년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이 의회에 몸소 출석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그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시대부터 전파 매체가 발달하면서 연설의 파급효과가 커져서 대통령들이 연두 교서 연설을 중요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연두교서 연설 현장에는 모든 의원들은 물론 삼부 요인들이 참석한다. 다시 말해,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에는 대통령, 부통령을 비롯한 모든 각료와 모든 의원, 대법관 등 권력깨나 있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 그러므로 이때 연설 현장에 무슨 변고가 생겨 대통령의 유고가 될 때 승계자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왜냐하면, 대통령 유고시 승계자들이 모두 이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승계자에 동시에 변고가 생기면 국가의 우두머리가 없어지는 셈이된다. 따라서 대통령 승계자 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 중 한 명을 반드시 지정생존자로 정하여 이 연설 현장에 있지 않도록 안전지역에 대피시킨다. 소위 말하는 지정 생존자 즉, ‘Designated Survivor’이다. 지정 생존자는 가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2016년에는 ABC 방송사에서 ‘Designated Survivor’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장벽 세우기와 연두 교서를 가지고 대통령과 하원 의장의 줄다기기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연두교서 연설이 정치적 힘겨루기의 볼모가 되어 시끄러운 판에서 일반인들의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 든다. 연두교서와 장벽이 민생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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