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은 매우 일상적인 말입니다. 의례적(儀禮的)인 인사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인지 고맙다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언어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 언어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번 고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형식적입니다. 대답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감정이 담기지 않는 말이 됩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까요? 우리말에서는 보통은 '아니에요, 별말씀을요' 등의 표현이 자주 쓰입니다. 우리말의 겸손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내가 한 일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님을 표현하는 겁니다. 한편 어학 교재에 자주 등장하던 '천만에요'는 오히려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가 처음 한국어 교재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천만에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용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나요?
영어에서는 고맙다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You are welcome'이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너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좋습니다. 영어에서는 너를 도와서 나도 기쁘다든지, 언제든지 돕겠다든지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참 따뜻한 표현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쓰는 언어여서 이에 대한 대답도 많이 발달한 것 같습니다. 저는 외국어에서 이런 표현을 잘 보았다가 우리말에 빌려 써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외래어, 외래표현도 좋은 말, 좋은 표현이라면 더 많이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외래어는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할 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서는 고맙다는 말 자체를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답도 발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이에 대한 대답도 우리말에서는 오히려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말보다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최근에는 고맙다는 인사가 많이 들립니다. 이제 우리말에서도 고맙다는 표현이 많이 자연스러워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떤 드라마에서 '고맙다'에 대한 대답으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놀랍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그 드라마에서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은 평상시에 고맙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한 건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 겁니다. 또는 뭔가를 포기하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거기에서 고맙다고 말을 한 사람은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겁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라는 말에서 우리는 종종 이별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문자 메시지가 위험하고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슴이 덜컥하기도 합니다. 특히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요?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약해지지 말고 더 마음 단단히 먹고, 살려는 의지를 갖기를 바라겠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고맙다는 말은 때로 너무나도 아픈 표현입니다. 눈물 나게, 힘들게 꺼낸 한 마디일 수 있습니다. 제발 나를 돌아봐 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의례적인 인사말도 어떤 상황에서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쓰는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맙다는 말이나 그에 대한 대답은 의례적인 상황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쓰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에도 말의 무게를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이 고마운지 왜 고마운지 생각해 보면 서로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작지만 따뜻한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