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하나의 던짐에도 파장을 일으키며 설레던 가슴이 꽁꽁 얼어붙었다. 아니, 어쩌면 출렁이는 파동에 그만 어지러워 스스로 강풍을 동원하여 호수를 얼려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들반들 얼음이 얼은 가슴은 돌을 던져도 튀어나갈 뿐, 더 이상은 파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얼어 붙은 마음호수를 바라보며 물살에 요동칠 일도 없다며 되레 편하다고 위안해 보지만 속은 하염없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얼어버린다는 것인가. 그렇게 나는 열정을 상실했다. 무감각해진 감성, 더 이상, 크게 기뻐 웃을 일이 없다. 도전을 포기하고 편함을 선택한 궁색한 변명 앞에 나날이 게을러지고 일상이 무의미해지는 초라하고 우울한 거적을 뒤집어 쓴 패잔병의 몰골이 되었다. 그냥 대충 살지, 뭐 그렇게 나이 들어 난리를 치냐는 내 안의 작은 음성은 드디어 나를 굴복시키고 마침, 미친 듯이 밀고 나가던 일의 회의에 결국 손을 놓아 버렸다.
새떼도 떠나고 생명의 떨림도 사라진 반들반들 얼어 붙은 마음호수를 무덤덤해 바라보던 어느 날, 우연히 듣던 인문학 강의 중 "감정이 살아 있을 때만 살아 있는 것이다" "40세에 죽어도 괜찮다. 즉, 죽는 날까지 감정이 살아 있는 채로 살아라" "죽어 있는 채로 살지 마라!"라는 철학자의 애정 어린 고함 소리에 나는 세찬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번뜩 다시 깨어났다.
텔레비전을 끄고 어둠 속에 오래 앉아 눈물을 흘렸다. 정신을 차리고 깊게 고민하고, 사유하고, 나는 다시 열정을 회복하기로 마음 먹었다. 설렘의 단어 열정!!! 그렇다면 나는 나의 얼은 가슴, 동결된 마음의 호수를 어떻게 깨부수고 녹일 건인가. 채워야 한다. 그 일이 기다려지고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게 나를 몰입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어떤 매력적인 꿈꾸던 일로 나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 달려가야 한다. 내 감정을 살려내며 생생한 에너지를 주는 풋풋한 향내를 내는 사람들 곁으로. 떠나야 한다. 미지의 세계로 그 낯설음과 새로움 사이 신선한 충격의 세계 속에 나를 발견하는 장소로, 그리고 사고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연극.영화.박물관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라도 잠자던 감성을 깨워 인식의 장을 확장시키고 결국, 삶을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리라.
2019년 오랜 우울을 깨고 일어나 다시 생기 넘치는 열정을 살려야 한다고 외쳐본다. 순간, 젊었을 때 뭐하고 이제야 웬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핀잔하며 웃음으로 빈정대던 친구의 말이 생각의 꼬리를 잡는다. 젊지 않은 나이(?) 글쎄, 매일 늙어가는 우리의 시간 앞에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제2의 인생을 젊음으로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배움을 멈추지 않고 감정의 폭을 올리며 죽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음의 주인으로 열정적으로 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냉정! 생기 넘치는 영혼, 그것을 냉정으로 제어하고 길들이리라. 끝없는 공부로 낮은 데서 높은 곳까지, 가까운 곳에서, 멀리까지, 끊임없이 정진하리라. 나이에 걸맞은 이성적 인지의 당연한 기본 위에 생의 밝음과 어두움을 통과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 위에 빛나는 세련된 감성의 소유자로 거듭 나리라. 생각을 정리 하고 고개를 드니 하늘이 푸르다. 호수를 도끼로 내리친다. 쩍! 하고 얼음이 갈라진다. 물이 솟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