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장의 신흥 아이비리그 탐방] (2) 보스턴 칼리지
15개 종목에서 ‘전국 디비전 I’ 포함
가톨릭 예수회 설립 종교색채 강해
특히 지성 개성 도덕 종교관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업 성취와 사회봉사 정신을 두루 갖춘 지도자 양성도 비중을 두고 있다. 예수회의 색채는 학교의 모든 생활 속에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특히 총장 이하 교무처 교수진 직원 가운데 54명이나 되는 예수회 신부 또는 수사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전세계 20여개국에서 온 27명의 예수회 관계자들이 대학원에 재학하거나 교환 교수로 일하고 있다. 미 대학 가운데 예수회 비율이 가장 많다.
보스턴칼리지의 이그나시안 신앙 센터 역시 예수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이 센터는 신앙과 문화를 연구하고 보스턴칼리지 재학생들에게 예수회의 신앙 전통을 가르치며 종교간 상호 교류를 꾀하고 있다.
보스턴칼리지는 1863년 단 3명의 교수와 22명의 학생이 모여 공부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9월 5일 정식으로 학과 공부가 시작됐으며 이후 70년 동안 보스턴칼리지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영어와 현대 외국어 철학과 종교를 가르치는 소규모 인문대로 머물렀다.
보스턴시 남부에 있는 보스턴칼리지 고교와 강의실을 함께 사용하다 보스턴 교외의 체스넛힐로 옮겼다. 1909년 6월 19일 개슨홀 건설을 기점으로 성 메리홀 데브린홀 뱁스트 도서관 등을 신축했고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학교 사이즈가 두 배로 늘어났다.
보스턴칼리지는 설립 당시부터 종합 대학으로 인가를 받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 1920년대 말에야 여름 학기를 개강했고 이후 인문 계열 대학원 프로그램 법과 대학원 및 야간 대학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1930년대 사회복지 대학원 상경 대학원(월러스 캐롤 스쿨)이 문을 열었고 1947년 간호대학과 1952년 교육대학(캐롤린/피터 린치 스쿨)이 차례로 선보였다. 1952년 인문 대학원에 처음으로 박사 과정이 설립돼 종합대의 면모를 갖추게 된 셈이다.
1972년 9월 새 총장으로 도널드 모난이 취임했을 당시 보스턴칼리지는 3000만달러의 부채와 자산이 600만달러도 안되는 아주 가난한 대학이었다. 연일 보스턴칼리지가 하버드대에 팔릴 것이라는 루머도 나돌았다. 교직원들의 월급이 1년째 지급되지 않는 등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모난 총장은 재정난 타결을 위해 학교의 운영권을 예수회가 아닌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졸업생에게 넘겼다. 이같은 결정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둬 1974년 보스턴칼리지에서 1.5마일 떨어진 곳에 있던 뉴턴대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40에이커의 대지와 15동의 대학 건물을 인수함으로써 800여명의 법과 대학원생을 가르치는 대학원 강의실과 기숙사를 확보했다.
모난 총장은 24년간 학교 운영을 맡았으며 1996년 윌리엄 리히 총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보스턴칼리지의 토대를 닦은 모난 총장과 리히 총장 모두 예수회 소속이다. 리히 총장은 1999년 11월 이 학교의 모토로 '영원한 발전 Ever to Excel'을 내걸고 4억달러에 달하는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100명의 교수 증원 5000만달러 학자금 마련 아카데믹센터와 도서관.학생관.인문학관 건립 등을 추진했다.
전체 학생 1만4395명 가운데 여학생의 비율은 53%다. 소수계 학생은 24%이며 84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교수진의 98%가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2008년도 입학생의 SAT 평균 점수는 2060점. 총 지원자 3만1000명 가운데 27%가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보스턴칼리지의 큰 자랑거리는 대학 스포츠 12종목의 남자팀과 15종목의 여자팀이 미국 대학 '디비전 I(Division I)'에 모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운동도 잘한다'는 말은 보스턴칼리지 학생들에게 꼭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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