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11월 영국의 대중일간지 데일리 미러는 '박지성의 영입은 재난에 가까운 실패작(the disastrous signings)'이라고 악평했다.
당시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박지성은 우리 팀에서 실력보다 낮은 대접을 받는 선수 중 하나다. 팀 동료들 모두 그를 좋아한다"고 옹호했다.
최근 영국 언론들이 퍼거슨 감독이 말했던 '저평가'를 논하며 박지성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자인 스카이스포츠는 1일 '박지성은 아마도 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또 다른 대표적인 사나이'라며 달라진 그의 위상을 조명했다. 그동안 박지성이 제 대접을 받지 못했던 편견은 무엇이었나. 영국 언론들은 그의 어떤 면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나. 박지성을 향한 새로운 시각들을 짚었다.
▲박지성은 골을 주워 먹는다(?)
지난달 21일 박지성이 뽑아낸 첼시전 골을 두고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는 골을 주워먹었다'는 평가 절하된 시각들은 여전했다. 지난해 3월 시즌 5호골까지 몰아칠 때도 '호날두를 등에 엎은 쉬운 골들'이라고도 했다. 특히 중국 언론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축구는 골의 예술성에 따라 점수를 얻는 스포츠가 아니다. 빗나간 오버헤드킥보다는 엉덩이든 무릎이든 한 골을 넣는게 더 낫다. 지난 2002한일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호나우두는 독일 GK 올리버 칸이 쳐낸 볼을 끝까지 달려와 선제골을 뽑았다.
이른바 주워먹은 골이었지만 유럽의 언론들은 끝까지 투쟁력을 잃지 않은 이 골을 월드컵 최고로 꼽았다.
쉬워보이지만 게을렀다면 결코 넣을 수 없는 박지성의 골도 마찬가지다. 아담 마샬 세탄타스포츠 기자는 "첼시전 골로 박지성이 뽑아낸 9골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름없는 영웅'의 새 이름은 헌신
지난 시즌까지 박지성의 수식어는 '이름없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헌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영국 언론들도 쉼없이 움직이는 그의 가치에 대해 다시 보기 시작했다.
첼시전을 마친 후 영국 BBC의 매치오브더데이의 해설위원들은 "저거 보세요. 수비로 전환될 때마다 박지성이 빈 공간을 메워주고 있어요"라고 칭찬했다. 그가 뽑아낸 골보다도 보이지 않는 헌신에 무게를 뒀다.
지난 2006년 5월2일 미들즈브러전 이후 2년 5개월간 30경기 선발 무패(26승4무)는 단지 우연만은 아니다. '행운의 부적'이라는 그의 별명은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탄생한 단어다.
▲강팀에도 강해진 박지성
박지성이 막 맨유에 입단했을 때만해도 첼시 아스널 리버풀 등 이른바 빅4 경기에는 출전 횟수가 줄었다. 중요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도 배제됐다. 그를 두고 약팀 전용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부상에서 돌아온 지난 4월 AS 로마(이탈리아)와 바르셀로나(네덜란드)를 상대로 풀타임을 뛰며 강팀에도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퍼거슨 감독은 올시즌 박지성을 첼시전을 비롯 프리미어리그 경기마다 선발로 내세우며 중용하고 있다.
주전이라고 말하는 스쿼드 플레이어로 올라선 것이다. 탄성을 자아낼 공격적인 패스와 마무리 능력 등은 아직 보완해야하지만 맨유 4년차 박지성은 점차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