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박숙희 기자】옛날 옛적 이탈리아에서는 종교가 국가이념이자 철학이었고, 서민과 귀족 삶의 토대였다. 인쇄술이 발달치못해 성경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시대, 가톨릭 교회는 미술가들을 고용해 성서 이야기를 담은 그림과 조각으로 성당 내부를 장식하며 전도했다.
세계 미술사에서 15∼16세기를 풍미했던 르네상스 미술을 빼놓을 수는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티치아노 그리고 벨리니 등 거장을 비롯해 르네상스 화가들은 교회의 위임을 받아 수많은 걸작을 제작했다. 그들의 작품을 소장한 로마, 피렌체(플로렌스), 베니스의 주요 뮤지엄을 소개한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 내 자리한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은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뮤지엄이다.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와 함께 유럽의 3대 뮤지엄으로 불리는 바티칸박물관은 지난해만 431만명이 방문했다. 비수기에도 30여분, 성수기에는 2시간 넘게 줄서 기다려 입장하는 관람객들은 성지 순례자들을 연상시킨다.
교황 율리어스 2세가 벨베데레 정원에 고대 그리스 조각 ‘라오쿤’을 전시한 것이 바티칸 박물관의 시초였다.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역대 교황들의 수집품을 모아 정식 박물관으로 발족하게 된다.
뮤지엄 방문객들은 십중팔구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걸작이 있는 시스틴 성당으로 향한다. 이 성당에만 하루 방문객이 평균 2만명선. 뮤지엄 입구에는 영어·이탈리아어·불어·독어·일본어·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마련되어 있다.
◇하이라이트 ^천지창조=조각가로 명성을 떨치던 미켈란젤로가 1508년 서른셋의 나이에 율리우스 교황의 위임을 받고 완성한 천장 프레스코화. 프레스코는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리는 회화기법으로 상당한 기교와 순발력을 요구한다. 미켈란젤로는 젊은 나이에 시험대에 올랐다.
미켈란젤로는 바티칸의 성베드로(St. Pietro) 성당의 건축가였던 브라만테와 라이벌 화가 라파엘로가 그림 실력이 입증되지 않은 자신이 실패하는 것을 보기 위해 교황을 부추긴 것이라고 회고한 적도 있다.
그는 홀로 천장에 매달려 등장인물만 300여명이 넘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꼬박 4년이 걸렸고, 그후 목 디스크와 시력 악화로 고생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천장을 9개로 나눈 후 이를 34개로 분할했다. 창세기에서 중앙에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그 주변으로 ‘12명의 예언자’ 삼각 모양의 벽과 반월형 벽면에 ‘그리스도의 조상’ 그리고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려져있다.
^최후의 심판=‘천지창조’ 완성 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활동하던 미켈란젤로는 1534년 로마로 돌아온다. 59세의 노장은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명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묵시적인 세계를 묘사한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벌거벗고 있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미켈란젤로는 남성의 근육미를 강조하는 누드를 통해 신의 인간화, 인간의 신격화를 추구했다. 여성의 가슴이 부자연스러운 것도 대부분 남성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 성 바르톨로뮤가 들고 있는 벚겨진 가죽 속의 얼굴은 바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다.
‘최후의 심판’이 공개되자 추기경들은 거룩한 성당에 나체화가 불경스럽다고 반발했다. 추기경들의 탄원에도 교황은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1564년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자였던 다니엘 다 볼테라가 그림 속 성기를 모두 가리는 작업을 해버린다. 때문에 다니엘은 ‘기저귀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1546년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세계 최대 성당이 될 성베드로 성당의 돔(dome) 건축자로 임명했다. 미켈란젤로는 돔이 완성을 보지 못한 채 88세로 사망한다.
^아테네 학당(1510~11)=교황의 서재에 성모자상으로 이름을 떨친 라파엘로에게 자신의 서재인 ‘스탄차 델라 세나투라’에 프레스코화를 위임한다.
라파엘로는 그리스 철학자 54명을 등장시켜 기독교와 고대 철학의 조화를 묘사했다. 다빈치의 얼굴을 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 있고,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닮은 헤라클레이토스와 검은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을 등장시켰다.
^라오쿤 군상=기원전 1세기 경 제작된 대리석 조각으로 트로이의 제사장 라오콘과 두 아들이 뱀에 물려 죽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 1506년 한 농부가 발견,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청원해 구입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쿤 군상에 심취했고, 이에 영향을 강하게 받아 ‘반항하는 노예’‘죽어가는 노예’ 그리고 교황 율리어스 2세의 무덤 조각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99년 라오쿤 군상은 이탈리아를 정복한 나폴레옹이 약탈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갔다. 이 조각은 프랑스 신고전주의 미술에 영향을 주었다가 1816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바티칸으로 돌아온다.
# 이탈리아 박물관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