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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성격만큼 다양한 '직책'

Los Angeles

2008.10.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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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이콘·오피니언 리더·사회활동가
통수권자 최측근으로 정책 좌우하기도
퍼스트 레이디 (First Lady)로 불리는 미국의 영부인은 과연 정확히 어떤 지위일까.

직접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자리가 아니며 따로 월급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부인들은 분명 국내외로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고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바로 옆에서 조언도 하며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또한 이들이 입고 먹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전국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패션아이콘이자 여성들의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하다.

역대 영부인들을 살펴보면 각기 자신만의 방식대로 대통령 곁을 지켰던 이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백악관의 현모양처

일반 국민들에게 백악관 안주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현모양처'와 같은 완벽한 아내의 이미지다. 따라서 영부인들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는 존재로 자리해왔다.

이들은 우선 오찬 만찬 파티 등 백악관에서 열리는 크고작은 행사의 호스트로서 귀빈들을 접대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또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 시즌에 맞춰 백악관을 꾸미고 전담 요리사를 고용하는 것도 영부인의 몫이다.

'이상적인 영부인'의 모습을 처음 새긴 것은 돌리 매디슨 여사였다. 아내를 여의었던 토머스 제퍼슨이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제임스 매디슨의 아내 돌리 매디슨에게 백악관 행사 접대를 맡기면서 매디슨은 후에 대통령이 된 남편의 임기까지 합쳐 10여년간 백악관의 안주인으로 있었다.

농장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왕'과 '평민'의 중간지점을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품위있게 귀빈들을 대접하기로 유명했으며 초대손님을 계급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온화한 성품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영국과의 1812년 전쟁 당시 공격을 받은 백악관에서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지켜내 백악관을 지키고 보호하는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굳혔다.

◇팔방미인 활동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백악관 입성 전부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온 영부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활동가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레노어 루즈벨트 여사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루즈벨트가 대통령직을 4번 연임하면서 가장 긴 영부인 생활을 한 엘레노어는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에 대한 기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소아마비 때문에 멀리 여행하기 힘들었던 루즈벨트 대신 그녀는 남편의 '눈과 귀'가 되었고 최초로 매주 기자회견을 가지고 신문 칼럼을 발행한 영부인이 되었다.

이밖에도 노동 인권 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였고 당시 대공황으로 인해 힘겨워하던 국민들을 돕기 위해 '뉴 딜' 정책에도 상당부분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0년대에 그 정신을 이어받은 인물은 올해 대권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다. 그녀의 이름앞에는 엘레노어 여사처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법대를 나온' '선출직에 당선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등 화려한 경력을 갖춘 최초의 영부인이 됐다.

힐러리는 또한 비서실 간부들이 근무하는 백악관 서관 '웨스트 윙'에 자신만의 사무실을 차렸고 의료보험 개혁을 주도하기도 했다. 강한 커리어 우먼이었던 그녀는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상을 거부하며 "나는 집에서 쿠키나 굽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차기 영부인의 모습은?

그렇다면 내년 1월 20일부터 백악관에 입성할 영부인은 과연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11월 4일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할 경우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 된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하버드 법대 출신 변호사인 그녀는 현재 오바마 상원의원의 대선 캠페인에도 두루 참여하며 개별 선거활동을 벌일만큼 왕성한 활동가다. 힐러리가 그랬듯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셸 여사는 또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 매우 어린 두 자녀들의 백악관 생활을 돌보는 역할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부부의 두 딸 말리아와 사샤는 각각 9세와 6세다.

반면 존 매케인 후보의 아내 신디 매케인 여사는 역대 영부인 가운데 최고 재력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평소 국내외를 막론한 자선활동으로도 유명한 매케인 여사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미국 최대 규모의 맥주회사 앤호이저 부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백악관 안주인 역할과 기업가 역할 사이를 어떻게 조율할 지도 주목할만 하다.

또 비교적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그녀가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는 백악관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첫 퍼스트 레이디는 퍼스트 레이디가 아니었다?

영부인을 지칭하는 단어 '퍼스트 레이디 (First Lady)'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고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거의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미국 역사상 첫 영부인이었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부인 마사 워싱턴 여사는 이름 앞에 '레이디'가 붙여졌다. 이밖에도 '미세스 프레지던트 (Mrs. President)' '미세스 프레지던트레스 (Mrs. Presidentress)' '퀸' 등 영부인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존칭을 사용하도록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퍼스트 레이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49년 돌리 매디슨의 장례식에서다.

당시 대통령이 그녀에 대한 추모사에서 '우리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처음 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쇄 매체에서 처음 쓰인 것은 10여년이 지난 1860년이 되어서였다.

주간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페이퍼'는 평생 독신이었던 제임스 부캐넌 대통령을 위해 귀빈을 대접하는 역할을 도맡았던 그의 조카 해리엇 레인을 '백악관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표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그녀를 달리 칭할 말이 없어서 나온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퍼스트 레이디'가 통용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877년 대통령에 취임한 러더포드 헤이스 대통령의 부인 루시 헤이스가 금주운동과 청렴한 기질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언론에 본격적으로 '퍼스트 레이디'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기에 힘입어 1911년 돌리 매디슨 여사에 대한 연극이 '이 땅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고 점차 '퍼스트 레이디'라는 단어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정하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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