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길(DP, Devil’s Path)’은 등산로가 험하기로 유명한 캐츠킬의 대표적인 트레일의 이름이다. 이 트레일은 3500∼4000피트 사이의 높은 산 여섯 개를 연결하는 코스로 총 25마일에 달하는 능선과 계곡을 오르내린다. 뉴욕 근처의 산꾼들이 한번쯤은 도전해 보고싶어 하는 이 코스는 대개 2박 3일 일정으로 오른다.
1600년대 이 지역에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인들이 험한 산세에 눌려 ‘악마’ 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악마의 길 외에도 ‘악마의 묘비(Devil’s Tombstone)’ 등 그와 관련된 이름이 여러개 있다.
악마의 길 패스는 루트 214가 지나가는 스토니클로브를 기점으로 동서 양쪽으로 나누어진다. 다섯 명의 회원이 전체코스의 약 절반에 해당되는 13.5마일 가량을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첫째날은 9.3마일의 산행이다. 빨간색 마크의 악마의 길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낙엽의 향연이 펼쳐졌다. 햇살에 반짝이며 내려앉는 노랑·빨강·주홍색의 잎사귀들, 발 아래엔 방금 떨어진 신선한 낙엽들이 푹신하게 깔려있다.
나뭇가지들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푸르다. 처음에는 완만하던 산길이 점점 더 가파르다. 잠시 후 트레일은 파락색의 지미도란(JD)을 지나 출발지점에서 약 1.7마일 가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멀리 허드슨 강에서 바라보면 인디언의 머리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산의 머리 부분은 깎아지른 돌산이다.
정상에서 0.5마일의 내리막길을 내려와 지미도란 낫치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이다. 당일 산행이라면 이제 내려갈 길만 남은 건데 오늘은 두개의 산을 더 넘어야 한다. 그래도 일정의 3분의 1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뿌듯하다.
다시 올라가는 트윈 마운틴은 쌍둥이 봉우리가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두 봉우리 다 바위산으로 아주 아름답다. 여기도 주로 경사가 급한 바윗길이라 만만치 않다. 인디안헤드를 내려오며 약간 풀린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무거워진다.
두 봉우리 다 등산객으로 꽉 차있다. 긴 종주 산행 때에는 식사시간이 따로 없이 간단하게 ‘행동식’으로 대신한다. 오늘의 행동식은 재명씨가 정성들여 만들어 온 아르헨티나식 튀김만두 ‘엠파나다’.
트윈을 내려오는 길은 1마일이 채 못되지만 험한 바위로 연결된 코스라 시간이 걸린다. 슈가로프와 트윈의 분기점인 피코이 낫치에 오후 3시 경 도착했다. 다시 900피트를 올라야 하는 슈가로프 바위로 점철된 가파른 길을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 문득 눈길이 아래에 펼쳐진 가을의 절경에 눈이 멈춘다. 아! 힘들게 오르내리느라 잠시나마 이 아름다운 풍경을 잊고 있었구나.
어지간히 올라왔다 싶어 뒤돌아보니 아까 넘어온 트윈 마운틴이 아직도 머리 위로 보인다. 얼마나 더 올라야 발아래로 보일까? 정상으로 가는 비스듬한 능선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는 듯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3800피트의 정상을 언제 지났는지 드디어 내리막이 시작된다.
여기서 오늘밤 야영지인 밍크할로우까지는 사람들이 ‘자살길’이라 부를 정도로 악마의 길에서 제일 험한 0.95마일의 내리막 바윗길이다. 밍크할로우 쉼터(Lean-To)에 오후 5시30분쯤 도착했다. 길어온 샘물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배가 부를 만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 맛에 산에 오는 거지.
힘들게 넘어온 슈가로프 위로 둥근 달이 떠오른다. 낙엽 위에 터프론 한장 깔고 침낭 다섯개 나란히 펼치니 노상의 일류호텔이다. 누워있는 얼굴 위로, 침낭 위로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비오듯 쏟아진다.
낙엽도 달빛도 더 즐길 새 없이 오후 8시 모두 곯아 떨어졌다. 신기한건 죽은 듯이 자다 다섯 명이 동시에 잠이 깬다. 새벽인 줄 알고 시계를 보니 딱 자정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네 시간 정도 깊이 자고나면 회복이 되나보다.
둘째 날 아침이다. 오늘은 플레토우(Plateau) 산 하나만 넘으면 되니깐 마음이 가볍다. 오늘은 4.6마일을 걷는다. 정상능선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힘들다고 박 대장이 강조한다. 속으로 그래봐야 두 시간 정도일 테니 견딜 수 있겠지 다짐한다.
직각에 가까운 오르막길이 힘들기는 한데 미리 겁을 먹고 마음 단단히 대비하고 최대한 천천히 꾸준히 올라온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전망 좋은 3840피트의 정상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에서 제일 높인 산이다. 정상에서 1마일 넘게는 거의 평평한 숲속 오솔길이다. 양쪽에 빽빽이 둘러선 소나무 숲길,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삼림욕 길인데 쌓인 소나무 낙엽으로 푹신푹신한 바닥은 그동안 쌓인 발바닥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해준다.
능선의 중간쯤에서 새로 생긴 트레일 표시를 하나 만났는데, 여기서 트램퍼산(Mt. Tremper) 까지 연결되는 장장 10.4 마일의 새로운 길이라 한다. 여기서부터 오늘 목적지인 루트 214까지는 2.2마일 거리다. 시간이 넉넉하여 천천히 내려왔는데도 오후 1시쯤 산행이 무사히 끝났다.
가는 길: NY THRU WAY. Rt.87 EXIT19-Rt.28 West-(1)Rt.214 North(Hunter & Plateau Mt. Notch Lake Parking Lot)(2)Rt.214 North-23A West-S. Main St. Turn Left-Rt.16(6마일)-Prediger Rd.
글=박수자(뉴욕한미산악회 http://cafe.daum.net/nykralp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