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 역사칼럼] 미국의 플랜테이션 역사
우리 사극이나 역사책에 ‘천석꾼’, ‘만석꾼’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천석꾼은 1년에 쌀을 천 가마니를 생산하는 땅의 주인이라는 뜻이고, 만석꾼은 만 가마니의 쌀을 생산하는 토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1천 석의 쌀이 150톤쯤 된다고 하니, 만석꾼은 엄청나게 큰 토지를 가진 대농 지주인 셈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이런 대농 지주가 있기 마련이다.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특히 이런 대농 지주가 많게 되었다. 아메리카의 대농 지주가 운영하는 기업식 농장을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라고 부른다.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사람을 플랜터(Planter)라고 부르는데, 무언가를 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냥 ‘농부’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단어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단어의 뜻이 변하여 대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에서의 플랜테이션의 기준은 20명의 노예를 부릴만한 땅의 농장을 가진 것을 말했다. 엄격한 기준은 아니고 대충 그렇다는 말이다.
플랜테이션의 개념의 기업적인 대농장은 고대 로마 시대에도 있었는데,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라고 불렀다. 정복 제국인 로마가 영토를 넓히면서 생긴 일종의 부산물인 셈이다. 이렇듯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영토를 확대하면서 플랜테이션이 생겨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은 대개 현금 작물이라고 하는데, 현금 작물이란 돈을 벌 목적으로 대량으로 생산하는 작물을 말한다. 사탕수수, 담배, 커피, 파인애플, 면화 등 무수히 많은 작물이 현금 작물에 해당한다. 결국 플랜테이션이란 판매만을 목적으로 대규모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남아메리카와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생겨난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은 마침내 북미 대륙에도 번져나갔다. 미국 독립 이전에는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담배 농장이 번성했다. 당시에는 담배가 아메리카에서 유럽에 전해지자 담배가 유럽 사람들의 인기 기호품이 되었으며, 담배가 유럽으로 수출되어 큰 돈이 되는 작물이었던 것이다. 영국이 북미 대륙 동남부 지방으로 식민지를 확대하면서 동남부 지방에서는 담배 대신 면화와 사탕수수가 주로 재배되었다. 특히 면화는 동남부 지방의 주요 수입원이었으며 이 면화 생산과 수출이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된 데도 일조했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에는 사회가 점점 안정되면서 플랜테이션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플랜테이션의 역사가 미국의 역사와 궤도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기계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플랜테이션을 운영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이 대량의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결국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만들어 부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흑인 노예제도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미국 초기의 역대 대통령은 대개 거대 플랜테이션의 주인이었으며, 노예제도가 비인도적이라고 생각한 대통령이라고 해도, 본인의 플랜테이션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도 않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여 혹독한 노역을 견디면서 백인들의 야욕을 위해 혹사당했던 흑인 노예들의 희망 없는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노예제도가 19세기 중반 이후까지도 남들보다 뒤늦게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남부의 플랜테이션을 포기할 수 없었던 백인 농장주들의 탐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예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국의 플랜테이션은 노예가 해방된 남북전쟁의 시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하겠다. 노예가 해방됨에 따라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노예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단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고, 때마침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져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노예를 더 이상 부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정이 나아졌지만,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는 여전했고, 노예 해방 이후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에도 유색 대한 백인들의 태도에 아직도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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