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산고(産苦)에 대하여 – 악성 베토벤

Chicago

2019.06.28 15:3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새로운 생명을 출산시킬 때 겪게 되는 고통은 경험하지 않은 이에게는 도저히 다 설명해 줄 수 없는 어려움과 시련이다. 창세기에 보면,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출산의 고통의 근거가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의 명을 어긴 벌로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며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인간을 탄생시킬 때의 고통만이 아니라 그게 어떤 내용이든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과정은 항상 고통이 수반되는 일임을 안다. 영감과 창의력에 의거해서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는 예술가들이 겪는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의 많은 실례는 이미 무수히 소개되어 왔다. 비단 예술품의 생산뿐 아니라, 자신들이 깨달은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 소명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고통은 확대된 의미에서의 산고라고 볼 수 있다.

음악계의 악성이라고 불리우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한창 인정받고 활약하던 20대 중반부터 청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많은 지병을 가졌던 음악가다. 당시 음악가들이 귀족들의 후원하에 작품활동과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음에도,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작업에 간섭하는 귀족들을 가차없이 질타했고 그들의 권위에 굴하지 않았다. 당대의 음악인들로부터 부정적인 비평을 들을 때조차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세대를 위한 것”이라며 당당하게 묵살했던 그였지만 자신의 청력상실로 인한 타격은 컸다. 청력에 절망한 그는 하인리겐트슈다트에서 유서를 쓰기도 했지만 자신이 느끼는 것을 다 음악으로 이루기까지는 죽지 않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후 2번부터 9번에 이르는 불멸의 교향곡들을 발표해 갔다. 그는 항상 작곡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악상이 마치 눈사태처럼 그를 덮쳤고, 그 순간 눈을 빛내며 한쪽 구석으로 달려갔다고 전해온다.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멈추고 서서 마치 머리를 스쳐 오른 공중의 새를 바라보듯이 허공을 직시하기도 하고, 시골길을 걷다가 두팔을 흔들며 크게 괴성을 지르기도 했는데, 자신은 노래했다고 했지만 그의 소리에 언덕의 소떼들이 도망칠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창작에 몰두해 살던 사람인지 짐작케 한다. 그는 직간접적으로 수시로 찿아온 악상이 음악으로 표현되기까지 질풍노도처럼 그를 흔들었다고 고백했다. 벌떼처럼 들어닥친 악상을 악보로 옮기기까지 베토벤은 먹고, 자고, 씻고 하는 일상을 잊을만큼 혼신을 다해 몰두했고, 한 곡을 10번 혹은 18번씩 만족할 때까지 다시 쓰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거칠고, 거만하고, 가차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후한 면이 있던 그의 내면은 신과 악마가 격전을 벌이듯이 전투적인 삶이었다. 짜리몽땅한 체구에, 헝클어지고 숱짙은 회백색 머리, 넓고 평평한 코, 작고 불타는 눈, 찡그린 눈썹, 마마자국이 있는 검은 피부, 악취나는 옷차림새 등 외모에 무심했던 그는 노숙자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광인처럼 홀려살던 그를 통해 그처럼 절제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올수 있었던 것으로 곧 그가 겪었을 산고의 정도가 설명되기에 그가 탄생시킨 음악에 대한 감동이 더 크다.

노벨상의 작가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청력상실은 신의 실수 가운데 가장 큰 실수라고 했다지만, 청력약화 이후로 사교 대신 대문호들의 작품을 열독하고, 철학과 사색을 통해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고 하니, 오히려 그를 사용하신 창조주의 계획이자 은혜일수도 있다. 지금 그의 소나타, 비창이나 월광을 들어보라. 그의 산고를 통해 신이 전하는 영혼의 선물이 느껴지리니. [종려나무 교회 목사, Ph.D]


최선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