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돌멩이와 달콤한 포도, 쉽게 이어지지 않는 이 관계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하얀 레이블에 새겨진 조약돌은 완전한 구형이 아니다. 겉 표면 또한 탐스러운 매끄러움은 없고 오히려 군데군데 파인 홈과 긁힌 자국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이 레이블의 주인공은 수백 년 전부터 스페인 라 리오하(La Rioja) 지역에서 명품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마르티네스 부한다(Martinez Bujanda) 가문의 역작 '핀카 발피에드라(Finca Valpiedra.돌의 계곡에 있는 포도밭)' 레제르바(Reserva) 와인이다.
레제르바는 통이나 병에 넣고 일반 숙성 기간보다 좀 더 오래 숙성시켜 생산한 와인을 말한다.
와이너리와 와인의 이름이 같은 핀카 발피에드라는 엘부로 강을 낀 라 리오하지역의 아름다운 계곡 조약돌과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80㏊의 최고 싱글 비냐드에서 생산된다. 1886년부터 와인을 생산해 온 마르티네스 부한다 가문은 다른 모든 농부의 염원처럼 자신들만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기를 원했다.
이런 가족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오너의 할아버지가 1970년대에 이 포도밭을 마련했다고 한다. 한 농부 가족의 오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포도밭이 바로 핀카 발피에드라다.
가족은 정성을 다해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20년의 세월을 보냈고 마침내 94년에 첫 번째 핀카 발피에드라 리제르바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빈티지(94 95 96년)들은 현재의 레이블과 달랐다. 와인 자체도 만족스럽지 않아 출시도 미뤄졌다. 꿈을 이루게 해준 의미 있는 와인이었던 만큼 가족은 많이 고민했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가족은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조약돌 하나를 찾아냈다. 처음에는 모나고 거칠었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며 부딪치고 갈려 둥글고 따뜻한 표면을 갖게 된 조약돌은 가족의 꿈이 성장해 온 모습과 많이 닮았다.
처음 포도밭을 구입하고 30년이 지난 핀카 발피에드라는 이제 라 리오하 지역에서 새로운 와인 역사를 쓰는 와이너리로 인정받고 있다. 토종 포도인 템프라니오 품종을 90% 사용하고 5% 정도 국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와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열린다. 마치 레이블에 그려진 돌멩이가 비바람에 조금씩 마모되면서 표면에 미세한 그림이 새겨지듯. 이 때문에 이 와인은 코르크를 열어 놓고 반 시간 정도 기다려 주면 좋다.
그러면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돌의 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핀카 발피에드라 포도밭 토양에는 풍부한 칼슘과 구리.철 등의 미량의 영양소가 함유돼 있어 독특한 맛을 준다. 깊고 짙은 색속에 집약된 붉은 과일 향도 와인의 감미로움을 더해 준다.
◇FINCA VALPIEDRA Rioja Reserva 2004
입안을 전체에 타고 흐르는 블랙베리와 다크 초콜릿 향이 매혹적이다. 꽃과 감초향이 뚜렷한 이와인은 전체적으로 풍부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깃들어 있으며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다. 40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