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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새벽 윷놀이

이원익/재불련 이사

처마 끝에 밤새 겨울비가 추적인다. 얼마 전 LA 주위 마른 하늘을 부옇게 덮으며 핏빛 태양을 재구름으로 가렸던 산불의 마지막 남은 불씨가 꺼지나 보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시정에 돈은 마르고 사람들의 어깨는 쳐졌다. 컴퓨터 앞에서 일자리를 찾다 지친 젊은 졸업생은 손가락을 마우스에 얹은 채 마냥 생각에 잠겼고 기름값이 치솟을 때나 이제 도로 내릴 때나 그저 한산할 뿐인 옷가게의 카운터 종업원도 주인도 이젠 눈치 볼 것도 없이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아는 바 되었다. 교회나 성당은 어떠려나 사람들은 어쩌면 좀 더 진지하게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것도 같다.

무엇이 잘못 되었고 누구의 탓인가? 인드라의 그물에 걸린 우리 모두의 탓 그 모든 중생들이 이때도록 홀로 혹은 함께 지어 온 좋은 업 나쁜 업이 얽혀 지금 우리가 금융난 경제난이라는 보답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새벽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빗방울 소리만큼 많은 무고한 생명들의 단말마가 또 다시 들려온다. 하지만 이렇게 쳐져만 있을 것인가? 이럴 땐 후다닥 심기일전 떠들썩한 윷판이라도 한 번 벌여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미국에 와서 절에서나 어떤 모임에서 한두 번 윷놀이를 한 적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제약이 여기서는 이웃을 생각해서 맘 놓고 떠들기가 뭣한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포커페이스로 둘러앉아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옮기고 하는 것은 그림이 영 어울리지가 않는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그믐을 보내고 새해를 맞거나 하면 꼭 윷 놀다가 목 쉰 이들이 한 둘은 있어 세배를 왔었는데.

윷이란 말은 본래 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윷놀이는 유래가 참 오래 돼서 옛 부여에서 각 부족에 가축 이름을 붙여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부르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도 개 걸 윷 모 하는 것이 돼지 개 양 소 말의 옛말이 바뀐 거라고 하니까. 어떤 이는 삼국 시대에 이런 놀이가 있었다는 증거가 우리 옛 문헌이나 일본 측의 문헌에 있다고도 하고 혹은 중국이나 몽고 등 주변 나라의 풍속에서 근거를 찾아보기도 한다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도 확실히는 그 유래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덧붙일 기원설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란다. 물론 불교 기원설이다.

신라시대에는 일종의 계모임인 보라는 것이 있어 불자들이 1년에 한 번 날짜를 잡아 낮에는 경을 읽고 공부하며 밤에는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뉘우치는 참회의식을 했는데 그 중에 점찰보라는 법회가 있었다. 이 때 불자들은 미리 나무 막대기 열 개를 준비해서 거기에다가 각각 불교에서 말하는 열 가지 죄악 즉 십악을 써 넣었다.

십악이란 알다시피 내 몸이 짓는 살생 도적질 사음이 있고 입이 짓는 거짓말 두 말 못된 말 꾸밈말 그리고 내 마음이 짓는 것으로는 욕심 성냄 어리석음인데 합이 열이다. 역시나 입이 그 중에서도 가장 업적이 많다.

불자들은 법회에서 이 십악 막대기를 던져 올려 뒤집혀 나타난 죄목을 자기가 전생에서 저지른 죄악이라 여기고 무조건 참회하였는데 지금의 윷놀이가 바로 이 법회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어 어둠 속에 혼자 자리에 누운 채 윷놀이를 해 본다. 두 손을 모아 십악 막대기들을 움켜 희붐한 천정으로 높이 던져 올리니 아뿔싸 물고기 배처럼 모조리 뒤집어져 후두두둑 내 가슴에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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