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타인의 자리에 서라
김세환 목사/LA연합감리교회
춘향전을 10대 중반에 처음 읽었을 때에는 순정을 지키려고 그 모진 매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는 춘향이가 불쌍했고 20대 때에는 전라도 남원 촌구석의 여자아이에게 발목이 잡혀 허구한 날 장원 급제하려고 골방에서 글만 읽는 이몽룡이 불쌍했답니다. 취업하려고 독서실에서 매일 주야로 공부만 하는 자기 신세와 비슷하더랍니다.
30대 때에 다시 춘향전을 읽으니까 이번에는 방자와 향단이가 한없이 불쌍합니다. 이도령과 춘향이 사이에서 항상 남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자기들은 언제나 들놀이만 서는 모습이 남의 밑에서 뼛골 빠지게 고생하는 자기 모습 같더랍니다.
40대 때에는 변사또가 그렇게 불쌍하더랍니다. 그가 한 고을의 수령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이 있었겠습니까.
당시의 관료들이 대부분 하던 대로 자신도 조금 즐겨보려 한 것 뿐인데 그 춘향이라는 못된 것에게 걸려서 삭탈관직에 멀리 귀향까지 떠나는 변사또의 모습이 명예퇴직을 당해 자리에서 밀려나는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지더랍니다.
그리고 50대 후반에 다시 춘향전을 펼쳐보니 이번에는 월매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춘향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막판에 다 자기 짝을 찾아가는데 유독 월매만 덩그러니 홀로 골방에 남겨져 곰방대를 빨아대는 처량한 모습이 아내를 먼저 보내고 자식들 다 출가시킨 뒤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 같아서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이기적입니다. 항상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려 합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 조차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줄기차게 바뀝니다.
변덕스럽기가 칠면조 사촌입니다. 자기가 좋으면 남들도 좋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반대로 자기가 싫으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분명히 싫어할 것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세상살이 속에는 항상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 황금과 같은 통찰력 있는 지적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간파하신 것입니다.
이제 온 인류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려고 편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척박한 이 땅으로 이민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즘은 그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만큼 전 세계가 경제적인 침체기라고 합니다. 지구촌 곳곳에 이상기후와 잔혹한 테러가 발생하고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도 각박하고 이기적입니다.
이번 대강절 기간에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기꺼이 자신을 비워 비천한 짐승의 여물통 속으로 화육하신 아기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리가 아닌 남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 그것이 바로 성탄절의 기본적인 출발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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