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의 향기] 술 (1)
전달수 신부/성마리아 엘리자벳 성당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도 "(주님) 당신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술을 얻게 하시나이다."(시편 10415)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술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일상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주제이지만 술로 인한 피해가 많은 것을 보고 있어 한 마디 해도 괜찮을 것 같아 감히 펜을 들어본다.
로마 사람들은 'In vino veritas(술 안에 진리가 있다)'라고 하면서 특히 포도주를 즐겨 마신다. 로마에 살다보면 점심과 저녁 식사에는 늘 포도주가 나오므로 술꾼들에게는 살기 좋은 나라다. 'In vino veritas'를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취중진담'이라고나 할까.
스페인의 어떤 지역은 V자와 B자를 구분하지 못해 'Vivere est bibere Bibere est vivere'라고 말하기도 한다. 풀이하면 "사는 것이 마시는 것이고 마시는 것이 사는 것이다." 이다. 술을 즐기는 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이니 솔직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술을 즐겨 마셔왔다. 술술 넘어간다고 해서 줄여서 술이라고 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술을 즐겨 마셔왔다. 가무와 풍류를 즐기는 민족답게 삶의 곳곳에 등장한 음식이 바로 술이며 이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보다 깊고 진하게 표현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잔칫집의 술은 기쁨과 흥겨움을 더해 주는 술이요 초상집의 술은 슬픔을 덜어주는 술이며 들판에서 마시는 한 잔 술은 고된 농사일의 피로를 덜어주고 힘을 돋우어주며 주막집의 한 잔 술은 긴 여행의 피로와 고달픔을 풀어주는 활력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가위의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도 바로 술이다. 한가위의 술을 '백주(白酒)'라고 하는 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풍류 시인들이나 소설가들도 술을 즐겨 마셨는데 조선시대 방랑 시인 김삿갓을 비롯해서 명기 황진이와 그녀의 술 벗들이었던 여러 선비들은 술과 더불어 시조를 지어 읊으며 인생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
근대의 대표적인 문학도 공초 오상순 수주 변영로 시인 조지훈 등 많은 문인들도 술을 즐겼는데 이들 중에는 지나친 음주로 자신들의 몸을 망치기도 했다고 하니 술이 주는 피해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술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다루는 성경에도 술 이야기는 빈번히 등장한다.
노아가 술에 취한 이야기나 로트가 술에 취해 실수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에 대해서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세례자 요한은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고 하고…저 사람은 와서 먹고 마시자 '먹보요 술꾼이며'(루카 734)라고 비판할 정도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술을 즐기신 듯하다.
더구나 잔치집에 술이 떨어진 딱한 사정을 보신 성모님이 아드님에게 부탁하자 물이 술로 변화되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아직 당신이 영광 받으실 때가 오지 않았는데도 딱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지니신 어머니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물을 항아리에 채우라고 하신 다음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요한 2장) 하셨다.
이것만이 아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테오에게 술을 권하기도 했다. "이제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을 위해서나 자주 앓는 그대의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좀 마시도록 하시오."(1디모 523).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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