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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 '자선냄비' 르포…희망은 더 크게 울리네

연금·월페어 쪼개 넣은 이웃들에 힘 솟아

연말 길모퉁이, 구세군 빨간냄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2008년 연말에도 이 종소리는 울리고 있다. 하지만 불황이 깊은 올해는 유난히 그 소리가 작게만 느껴진다. 살기 힘들다는 요즘, 누구를 위해 구세군의 종소리는 울리는가. 지난 주 본보 장열 기자가 LA한남체인 앞 구세군 모금현장에 동참했다.

아침 날씨가 꽤 쌀쌀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인 서지원(40)씨와 함께 구세군의 빨간 점퍼를 입고 종을 들자 설레는 마음에 추위는 금세 잊혀졌다. 과연 오늘 냄비엔 얼마가 쌓일까. 서씨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이시죠? 편한 마음으로 하다 보면 곧 채워질거예요.”

10여 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빨간 자선냄비에 첫 온정의 손길이 닿았다.
마켓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김성숙(63·LA)씨.

“종소리가 들리는데 그냥 지나가면 왠지 빚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비록 작은 액수지만 불우이웃들에게 잘 쓰여지길 바랍니다.”

첫 온정이 냄비안에서 식기도 전에 또 한명의 아주머니가 돈을 넣었다.

최옥순(43·밸리)씨는 “먹고 사는게 워낙 바쁘니까 특별히 봉사를 하거나 단체에 성금기부 등을 통해 남을 돕지는 못한다”며 “대신 구세군 냄비에 적은 성의를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마켓 앞이 조금씩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선냄비 앞을 지나쳤지만 정작 돈을 넣은 사람은 단 3명 뿐이다.

불경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에 행인들의 시선을 모으려고 종을 조금 빨리 흔들었다.

자원봉사자인 서씨가 옆에서 보기 안쓰러웠나 보다.

“종을 너무 빨리 흔들면 어떤 사람들은 시끄러워서 불평하더라구요. 대부분 오후보다는 오전시간 모금이 저조하니까 좀 더 기다려봅시다.”

그때 한 중년신사가 지폐를 꺼내 자선냄비에 넣었다. 은퇴한 뒤 연금을 타서 생활하고 있는 권무남(65·LA)씨.

“요즘 불경기라지만 나는 일정하게 돈이 나오니까 조그만 아끼면 남들 보다는 돕기가 더 쉽지 뭐….그래서 구세군 볼때 마다 왠만하면 몇 달러라도 더 넣을려고 해.”

얼마 후 거동이 불편한 윤(83·LA) 할머니가 꼬깃꼬깃 접은 1달러를 꺼내 자선냄비에 넣었다.

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남편이 평소 좋아하는 만두를 사서 집에 가는 길이란다.

“할아버지 간호하느라 나도 생활이 힘들지. 그래도 얼마 안되지만 꼬박꼬박 월페어 타는데 조금만 덜 쓰면 몇 달러는 넣을 수 있잖아. 어려울 수록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생각해야지….”

덤덤한 윤 할머니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상을 향한 큰 울림처럼 느껴진다.

이날 하루동안 걷힌 총 모금액은 139달러 37센트. 적은 액수 같지만 기분이 좋았다.

작은 냄비 안에 쌓인 것은 돈이 아니라 ‘희망과 사랑’이었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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