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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칼럼]홍안주생

Chicago

2008.12.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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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논설주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을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조선 최고의 기녀로 꼽히는 ‘황진이’를 기리는 시조다. 선조 때 문재(文才) 임제가 평안도사로 부임할 때 황진이 무덤에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홍안(紅顔)’은 ‘붉으스름한 얼굴’을 뜻하고 있다. 혈색이 좋은, 젊고 건강한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홍안’은 예로부터 미모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혀왔다. 미인의 조건 중 특히 ‘볼ㆍ입술ㆍ손톱이 붉어야 한다’는 ‘삼홍(三紅)’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인은 명이 짧다’는 ‘가인박명(佳人薄命)’대신 ‘홍안박명’을 쓴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고대 가사에서도 ‘방년이팔에 옥빈홍안…’, 국문학사에 빛나는 허난설헌의 규원가에서도 ‘박명한 홍안…’, 근세 국악 ‘사발가’에 ‘녹빈홍안,…알아 줄 사람 그 누구요….’라 읊고 있다. 신민요 중 ‘청춘홍안 자랑마라. 덧없는 세월에 백발되누나’ 등도 ‘홍안’에 대한 찬사다.

‘홍안’은 여성에게서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학업에 정진하는 젊은이’라는 ‘홍안서생(書生)’은 외모까지 출중한 청년을 뜻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붉은 색에 대해 상서로움과 경사의 상징으로 여겨 왔다. 붉은 색은 재앙을 막아주고 질병 등을 예방해주는 것으로 믿어 왔던 것이다.  

이같은 면에서 ‘홍안’에 대한 기림은 중국이 더하다. 고대 중국의 3대 미녀로 꼽히는 ‘양귀비ㆍ서시ㆍ왕소군’에 대한 묘사에서도 ‘홍안’이 빠지지 않는다.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도 ‘지존홍안(至尊紅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했다. 삼국지에서도 조자룡의 처음 등장에 ‘홍안의 호랑이 같은 청년장수’라 칭하고 있다. 어쨋든 ‘홍안’은 혈색좋은 얼굴을 뜻하므로 건강 미모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홍안’은 부끄러운 일이나 몹시 당황했을 때도 일어날 수 있다. 의학자들은 이런 증상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안면에는 특히 모세혈관이 많이 발달해 있어 자극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증세가 비정상적인 경우는 ‘안면홍조증’으로 치료를 요하고 있다.

반면에 음주 후 얼굴색이 붉어지는 ‘홍안’도 있다. 이는 알코올이 혈관을 확장해 일어나는 증상 또는 아세트 알데하이드 분해 효소가 적기 때문이다. 아세트 알데하이드는 술 즉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되는 과정에 나오는 물질이다. 따라서 이 물질이 체내에 오래 축적될수록 해로울 것은 뻔한 이치다. 술주정뱅이일수록 얼굴색이 쉽게 불콰해지는 것은 알코올 분해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증거일 수 있다. 이들 중 ‘딸기코’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주정뱅이의 ‘홍안주생(紅顔酒生)’은 건강의 적신호다.

음주로 얼굴색이 빨개지는 ‘홍안’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대장암 위험이 6배나 높다고 해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 ‘서울 국제 암 심포지엄’에서 밝혀진 소식이다.

조사팀은 대장암 진단자 1천290명을 조사한 결과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 등 동양인의 아세트 알데하이드 분해능력은 백인들에 비해 평균 30%에 불과한 실정이다. 백인들에 비해 그만큼 술에 약하다는 이야기다.

각종 ‘송년모임’으로 시카고 동포사회도 분주한 시기다. 특히 이 시기는 겹치기 모임으로 지나친 과음을 하기 쉽다. 그러다 보면 간 등 장기가 혹사당해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다.

특히 음주운전으로 단속을 당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경찰도 이 시기 운전자의 ‘홍안’ 여부로 음주상태를 판단하기도 한다. 좌우간 ‘홍안주생’,술과 ‘홍안’은 달갑지 않은 관계인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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