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아프다'는 말과 '앓다'라는 말은 같은 기원의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앓다'에 '-브-'가 붙어서 아프다가 된 말입니다. 요즘은 점점 앓다 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전에는 한참을 앓았다든지, 가슴앓이를 했다든지, 앓던 이가 빠졌다든지 하는 식의 표현이 많았습니다. 요즘 잘 안 쓰는 이유 중에는 문장 속에서 '알다'와 발음이 비슷하여 혼동이 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젯밤에 앓았다'라는 말을 발음해 보면 더 그런 느낌이 날 겁니다. 또한 '앓다'는 동사이고 '아프다'는 형용사라는 차이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픈 것은 움직임보다는 상태라는 느낌 때문에 형용사로만 더 쓰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다'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 아픈 것과 마음이 아픈 것으로 구분 지어 나옵니다. 어떤 게 더 고통스러운지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몸이 아플 때는 몸 때문에 견딜 수가 없고 마음이 아플 때는 마음 때문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더 아픕니다. 아픔은 슬픔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참 많습니다. 간단한 아픔이 아니고 큰 병에 걸리거나 큰 슬픔을 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과 만남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연도 아플 때가 많습니다. 큰 아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들은 아픔에 대한 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아마도 아픔과 두려움이 가득한 순간은 엄마가 아가를 낳는 순간일 겁니다. 엄마도 아프고 아가도 아픕니다. 엄마도 울고 아가도 웁니다. 아가가 울지 않으면 큰일이 납니다. 볼기를 때려서라도 울게 합니다. 울어야 새 생명을 얻습니다. 아기를 낳는 엄마도, 세상에 나오는 아가도 참으로 두려운 순간일 겁니다. 아가가 잘 태어날지 건강할지 걱정이 많습니다. 물론 엄마 몸에 대한 걱정도 많습니다. 요즘에 덜하지만 예전에는 아가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아가는 얼마나 두렵겠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편안한 엄마 뱃속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온다는 건 겁나는 일일 겁니다. 물속에서 물 밖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픔은 곧 기쁨이기도 합니다. 이 점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전헌 선생님께 아픔과 생명에 대해서 여쭈웠을 때 새 생명은 아프지 않고 태어날 수 없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귀할 겁니다. 아프지 않고 태어난 생명이 없기에 귀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상관없이 모든 생명은 귀합니다. 나도 귀하고 너도 귀하고 그도 귀합니다. 서로가 귀하다는 것을 알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아프고 두려웠기에 더 기쁜 겁니다. 아프다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아프지 않으려고 맞은 진통제에는 마약 성분이 있고 도리어 아픔을 끝내 이길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울증을 연구하는 분의 말씀에 의하면 우울증 약의 부작용 중에는 자살 충동도 있다고 합니다. 무서운 일이죠. 우울감은 없어졌을지 모르나 삶에 대한 의욕도 함께 사라진 겁니다. 아픔을 못 견뎌 생명을 버리기도 하니 아픈 이를 잘 살펴야겠습니다.
아가가 세상을 만나듯이 새 생명은 아프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는 아픈 진실입니다. 내가 지금 아프다면 그 한 가운데를 잘 지나가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야 합니다. 아니 만날 겁니다. 아픔은 반드시 아프고 지나가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고, 슬픈 사람이 많고,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제 글이 위로가 되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