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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 우천염천] 작가 하루키, 신성과 속세를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 1987년 '상실의 시대'를 발표해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던 작가.

우천염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사



수많은 장.단편 소설과 에세이로 상실감을 느끼면서 타인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사는 현대 젊은이들의 혼란을 그려낸 작가.

'우천염천(雨天炎天)-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는 하루키가 1988년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다.

1부의 그리스편은 아토스 산에서 스타브로니키다.이비론.필로세우.카라칼르.라브라 등 여러 수도원들을 차례차례 방문하면서 쓴 현실 세계와 신성의 영역을 가르는 정신적 이방지대에 대한 글이다. 2부의 터키편은 4륜구동 차를 타고 터키 동부의 국경지대를 탐방한 기록이다.

이 책은 2003년에 출간됐던 것이다. 여기에 당시 함께 여행했던 사진작가 마쓰무라 에이조의 사진 144컷을 수록해 재출간했다. 글로만 읽는 게 아닌 사진으로 그 당시 상황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게 여행에 동행할 수 있다.

20여년 전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지만 시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하루키의 작가적 힘 때문일 것이다. 요즘 나오는 흔한 여행서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리스의 '성'(聖)과 터키의 '속'(俗)을 대비시킨 묘사와 깨달음은 하루키만의 여행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우천염천'.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아토스 섬에서 만난 대책 없는 장대비와 터키의 마을을 돌아다닐 때 시달렸던 불볕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고단한 여행에서 길은 끝없이 험하고 날씨는 끝없이 짓궂고 식사는 끝없이 형편없었다.

에게 해부터 2000미터 높이의 험준한 아토스 산이 치솟은 반도를 하루키는 수도원에 묶으며 쉴 새 없이 걸어야 했다. 그리스정교의 땅인 이곳에서 하루키는 여러 수도원을 거치며 현실 세계 그 너머의 성스러움을 경험한다.

또 사륜구동 차를 타고 해협을 건너 위험.먼지.양.군인 투성이인 터키 동부의 국경지대를 지나면서는 진실하고 깊은 인간 세상을 들여다본다.

결국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와 햇빛을 뚫고 그리스의 수도원과 터키의 여러 마을을 여행한 하루키는 성과 속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보여준다.

"나는 처음에 쓴 것처럼 종교적인 관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인간이고 그렇게 쉽사리 사물에 감동을 하지 않는 굳이 말하자면 회의적인 타입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토스의 길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처럼 지저분한 수도사로부터 '마음을 바꿔서 정교로 개종을 한 뒤에 오시게'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일을 묘하게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가 정교로 개종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도사의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 그것은 종교를 운운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확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확신이라는 점에서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아토스처럼 농밀한 확신에 가득 찬 땅은 아마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신에 가득 찬 리얼 월드인 것이다. 캅소카리비아의 그 고양이에게 곰팡이가 핀 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어느 쪽이 현실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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